北 고위급회담 연기…몰아붙이는 美와 샅바싸움

by원다연 기자
2018.05.16 16:56:06

北, 맥스선더 연합훈련 이유 들어 고위급회담 연기
담화 통해 "일방적 핵포기 강요하면 북미회담 재고려"
볼턴 '리비아식 비핵화' 주장 반발, 체제보장안 요구
한미정상회담서 우리측 조율 역할 주문 메시지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자 3면에 애초 이날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중지하며 미국도 북미정상회담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하라는 내용의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실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북한이 16일 돌연 이날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면서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았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공식 발표 이후 미국 내에서 북한에 협상요건을 높이는 요구가 쏟아지는 데에도 침묵해왔던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새벽 우리측에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한다”는 통지문을 보내 이날 오전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에 대해 “남조선당국은 미국과 함께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에 대한 공중 선제타격과 제공권장악을 목적으로 대규모의 2018 맥스선더 연합공중전투훈련을 벌려놓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맥스선더 연합훈련은 한국과 미국이 지난 2009년부터 연례적으로 진행해온 연합 공중훈련이다.

올해 맥스선더 연합훈련은 지난 11일부터 이미 시작됐고 16일 회담 날짜는 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15일 북측에서 제안한 날짜다. 아울러 북측은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는 해당 훈련과 관련해 우리측에 특별한 의견을 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북측에서부터 훈련과 관련해 특별한 의견제기가 있었는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파악해봐야겠지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표면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내세워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했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북미 정상회담 전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는 이어 “미국도 남조선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북한은 이날 연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내놓고 ”미국이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한다면 북미 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이 담화에서 구체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발표가 공식화된 이후 미국 내에서 계속해 거론됐던 ‘리비아식’ 비핵화 방법론이다. 북한은 담화를 통해 “핵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앞서 13일(현지시간) 미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방법을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테네시 오크리지는 리비아와 카자흐스탄의 핵무기가 폐기된 곳으로 볼턴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가 보좌관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주장해왔던 ‘선폐기 후보상’의 리비아식 비핵화 방법론을 관철하겠다는 주장으로 이해됐다.



특히 볼턴 보좌관의 주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연일 “비핵화에 따른 북한의 번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앞서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을 접하고 만족할 합의를 이뤘다고 전한 것에 비춰, 북한의 이날 움직임은 북미 협상에서 추가적인 요구조건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회담 연기 통보의 근본적인 원인은 최근 미국 조야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나친 허들 높이기 및 압박에 대한 반발이 원인”이라며 “미국은 비핵화가 진정한 목표라면 불필요한 자극으로 북한의 체면을 구기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한의 이같은 돌발 행동에 당혹감을 보이면서도 우선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전 강경화 장관에 통화를 요청해 북한의 고위급회담 연기 통보와 관련한 상황을 공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북측의 조치에 유의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 역시 이에 앞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 계획을 계속하지 말라는 의사를 내비치는 어떤 것도 들은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는 북한의 움직임에는 한국의 조율 역할을 바라는 메시지도 들어있다고 해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계관 부장의 담화를 보면 비핵화 선제조건으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다시 확인했다”며 “미국측에 체제안전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굳이 이 시점에 남북 고위급회담을 깬 것에는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이 같은 북측의 입장을 전달하라는 메시지도 담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