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9·그랜버드 단종한다…'선택과 집중' 미래차 전환 속도
by이윤화 기자
2026.09.30 18:27:31
K3·모하비 이어 K9과 대형버스까지 정리…수요·규제 변화에 대응
K9 판매 2022년 6585대→작년 1581대…올 8월 누적 820대 수준
그랜버드 생산시설 특수차량 등으로 전환 계획…생산 역량 재배치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기아가 K9과 그랜버드의 생산을 연내 중단하며 라인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K3와 모하비에 이어 플래그십 세단과 대형버스까지 생산 중단 대상에 포함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차종은 정리하고 성장성이 높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등에 생산·개발 역량을 집중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30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K9의 단종 배경에는 장기간 이어진 판매 감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9은 2022년 6585대가 판매됐지만 2023년 3898대, 2024년 1870대, 지난해 1581대로 급감했다. 올해 1~8월 판매량도 820대에 그쳤다. 9월에는 29대가 판매되며 2012년 출시 이후 월간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형 세단 시장의 경쟁 구도도 K9의 입지를 좁힌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미엄 세단 수요가 제네시스 G80·G90 등으로 집중되는 가운데 기아의 주력 시장은 SUV와 레저용 차량(RV) 중심으로 이동했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는 점도 최근 친환경·고효율 차량을 찾는 수요에 대응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K9과 경쟁하는 대형 세단 시장의 판매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올해 누적 기준 K9 판매량은 791대에 그친 반면 제네시스 G80은 1만8861대, G90은 3087대가 판매됐다. 기아는 K9이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만큼 단종에 따른 판매 공백은 다른 차종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랜버드는 K9과 단종 배경이 다르다. 수요 감소보다는 강화되는 환경·사이버보안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주요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아는 기존 디젤 기반의 대형버스가 유로7 배출가스 기준과 2027년 시행되는 자동차 사이버보안 관련 규제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그랜버드 생산량은 1410대 수준이었다.
그랜버드는 1994년 출시된 이후 30년 넘게 생산된 기아의 대표 대형버스다. 기아는 현재 광주공장에서 생산 중인 그랜버드의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해당 생산시설을 군용차 등 특수차량 생산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기아의 버스 사업은 사실상 철수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
생산시설의 용도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차종 하나를 없애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존 설비를 유지하면서 수요가 제한적인 차종을 계속 생산하기보다 향후 사업성이 있는 차종으로 생산공간과 인력을 재배치해 공장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가 전기차와 SDV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라인업 정리는 생산 포트폴리오 전환과 맞물려 있다. 기아는 EV3·EV4·EV5·EV6·EV9 등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올해 1~8월 전기차 판매량은 6만6028대로 전년 동기 2만6171대보다 39.6% 증가했다.
기아의 국내 판매 구조 역시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올해 1~8월 국내 판매에서 RV는 25만4391대로 승용 9만4418대를 크게 웃돌았다. 시장 수요가 SUV·RV와 전동화 모델 중심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판매가 부진한 세단과 기존 내연기관 기반 차종의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모습이다.
그랜버드 단종에 따른 대형버스 공급 공백과 생산시설 전환 과정에서의 고용 문제 등은 남은 과제다. 특히 국내 고속형 대형버스 시장에서 그랜버드와 현대차 유니버스가 주요 공급 축을 형성해온 만큼 그랜버드 생산 중단이 시장에 미칠 영향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이번 K9과 그랜버드의 생산 중단은 기아가 모든 차급을 유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성과 미래차 전환 가능성을 기준으로 라인업과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전동화와 SDV 전환이 빨라지는 환경 속에서는 다양한 차종을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발·생산 자원을 성장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