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비리 잇딴 무죄에 공정위 "檢 망신주기 수사" 분개
by김상윤 기자
2019.01.31 18:17:10
지철호 부위원장 무죄 명예회복..업무복귀 관심
김상조 "지난 과오 송구스럽다..혁신할 것"
| 대기업에 퇴직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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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퇴직한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대기업에 강요한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일부 유죄 선고에 대해 공정위 내부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과 함께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원은 정재찬 전 위원장 시절을 제외하면 노대래·김동수 전 위원장 시절에는 오히려 당시 핵심 간부들이 재취업 문제를 막았다며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정 전 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입을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31일 2014~2017년 정재찬 전 위원장 시절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퇴직자의 불법 취업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정 전 위원장에 대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업무방해 외에도 뇌물수수·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받는 김학현(62) 전 부위원장은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받고 보석취소가 돼 법정구속됐다. 이들과 함께 당시 사무처장으로 일했던 신영선 전 부위원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인사 등을 담당하는 운영지원과장과 부위원장이 퇴직자의 취업 문제를 주로 상의한 뒤 결정해 위원장에게 보고했고, 공정위 현안과 관련된 기업들은 공정위의 요구를 어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재찬 전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보고받지는 않았더라도 이 전 부위원장 시절 같은 업무를 처리한 경험에 비춰 이를 승인해 범행에 관여했다고 유죄를 내렸다.
반면 노대래 전 위원장, 김동수 전 위원장, 한철수 전 사무처장 등은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기획재정부 출신의 김동수·노대래 전 위원장의 경우 뒤늦게 공정위에 소속되면서 퇴직자 취업과 관련한 내부 관행에 대해 알기 어려웠고 오히려 취업비리를 막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동수 전 위원장에 대해 “취임 직후 퇴직자와 공정위가 유착이 있는지 감찰하게 해 기존 퇴직자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며 “그가 모순된 행동을 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노대래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취임 이후 외부의 공정위 퇴직자가 공정위 내부와 유착·로비창구 역할을 한다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지시하고 공정위 퇴직자를 모아 교육도 실시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같은 법원의 선고에 대한 안타깝다는 반응과 함께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당시 다른 부처에서도 이뤄졌던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정재찬 전 위원장 시절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서며 불법을 저지른 점은 국민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무리한 재취업 비리가 인정되더라도 당시 검찰의 수사는 공정위 전체를 망신주기 차원에서 이뤄진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자녀 취업 관련 뇌물 혐의로 실형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집행유예나 무죄를 받지 않았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검찰의 공정위 수사 착수 당시에는 검찰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검찰은 전속고발권을 풀고 공정거래법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먼저 수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중대한 담합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로펌 한 관계자는 “공정위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가 전속고발권 뺏기라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피의 사실이 수차례 공표되는 등 공정위 망신주기, 흔들기 차원의 수사였다”고 귀띔했다.
공정위는 재취업 심사를 받지 않은 혐의를 받은 지철호 부위원장이 결국 무죄를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검찰은 지 부위원장이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에 재취업할 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지 않은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었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는 취업심사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 부위원장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약 6개월 가까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지 부위원장이 당시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이유에서 검찰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소문이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무죄가 났긴 했지만, 공정위 입장에서는 부위원장이 배제되면서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은 게 사실이다”고 비판했다.
김상조 위원장이 지 부위원장을 다시 업무에 복귀시킬지도 관심 포인트다. 지 부위원장은 “업무복귀 여부에 대해서는 위원장과 상의하겠다”고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와 관련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날 1심 선고와 관련해 “위원장으로서 지난 과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부혁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공식 입장문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