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통계에서 성소수자 존재부터 파악…인권 개선"

by이소현 기자
2022.03.21 20:34:57

인권위, 국가 통계에 조사항목 신설 등 권고
"트렌스젠더 실태 파악·정책 반영 단초 마련"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국가 통계 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하라고 통계청장 등에 권고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인권위는 21일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통계청장에게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권고사항을 밝혔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관련 내용 지침 마련 △각 기관이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관련 조사항목 신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조속히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고 정체화해 표현하는 성별(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며 “이들은 생물학적 성과 성별 정체성의 괴리 때문에 ‘성별 위화감’ 혹은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되며, 이 탓에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한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직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권위가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트랜스젠더 591명 중 65.3%(384명)가 지난 12개월(응답일 기준)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혐오표현을 접한 경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한 인터넷(97.1%)이 가장 높았으며, 방송·언론(87.3%), 드라마·영화 등의 영상매체(76.1%) 순으로 나타났다. 또 2019년 한 해 동안 우울증(57.1%), 공황장애(24.4%)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30%가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나쁘다고 답변했다.

특히 트랜스젠더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분증에 표기된 성별과 외모 등이 일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태조사 결과 이러한 불일치로 인해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 포기(21.5%), 투표 참여 포기(10.5%), 보험 가입 포기(15.0%)나 은행 이용·상담 포기(14.3%) 등의 어려움을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는 고용, 교육, 미디어, 행정서비스, 의료시설이나 금융기관 이용과 같은 일상생활 전반에서 편견에 기반을 둔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해 ‘국민보건의료실태통계조사’, ‘가족실태조사’ 등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관련 법령에 따라 시행되는 각종 실태조사에서는 성별 정체성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수집하지 않고 있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집단이 정책 수립 대상 인구집단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중앙행정기관과 통계작성지정기관의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각 기관의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해 정책 수립 등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통상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개정을 조속히 실시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세계보건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항목에서 제외했지만, 우리나라는 현행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성전환증을 ‘정신 및 행동 장애’ 범주의 하나인 ‘성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러한 분류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고 혐오와 차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국가 차원에서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정책 대상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존재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단초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