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 아파트 주민 뿔났다… "낡은 아파트 더이상 못 산다"

by김기덕 기자
2019.03.29 16:54:24

재건축 추진위원회, 도계위 상정 촉구 대규모 집회
총 다섯차례 심의서 퇴짜 "무책임한 갑질 행정" 반발
서울시 "대규모 개발 신중해야… 국토부와 협의 필요"

2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모여 서울시의 재건축 정비계획안 심의 지연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김기덕 기자)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초고층(49층) 건축 계획안도 바꾸고, 수차례 정비계획안 변경 요청에도 성실히 임했는데 재건축 심의 테이블에 조차 올리지 않는 게 ‘갑질 행정’이 아니고 뭡니까. 파이프 배관 파열에 녹물까지 새는 41년 된 아파트에 도대체 언제까지 살라는 건지 답답합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결국 단체 행동에 나섰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지만 서울시 문턱을 번번이 좌절하며 16년 간 사업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29일 오후 은마아파트 토지 등 소유자와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소속 300여 명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정비계획안에 대한 ‘재건축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상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정돈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지난해 8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가 요구한 정비계획안을 제출했지만 반년 넘게 묵묵부답인 상황”이라며 “재건축 인·허가 의무를 철저히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정으로 더 이상 피해를 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979년에 준공된 은마아파트는 최고 14층 28개 동 규모에 4424가구가 거주하는 강남 재건축을 상징하는 대단지 아파트다. 지난 2003년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서울시 첫 심의 단계인 도계위에서 총 다섯 차례나 퇴짜를 받으며 사업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실제 이 아파트는 2010년 3월 재건축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뒤 재건축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이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5년 12월 추진위는 주택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수립해 처음 서울시 문을 두드렸다. 이후 2017년 8월 도계위 테이블에 올라갔지만, 이례적으로 심의 조차 되지 않고 ‘미심의 조치’를 받았다. 결국 같은 해 10월 추진위는 주민 설명회를 통해 최고 49층 높이의 재건축 계획안을 35층으로 울며겨자먹기로 수정했지만 이후 보류, 재자문 등의 판정으로 사업이 멈춰선 상황이다.

은마아파트 추진위 관계자는 “준공 후 41년이 지난 더이상 수선이 어렵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라며 “단전, 누수, 승강기 고장 등 노후된 시설물로 인해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따졌다.

일부 주민들은 사업 지연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한 주민은 “추진위 집행부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층수 마저 낮아진 상황에서 차라리 1대 1 재건축을 통해 재건축 부담금도 낮추고, 임대아파트를 짓지 말자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용산·여의도 통개발 발언’이 주택시장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있어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미 국토부와 함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만큼 앞으로 대규모 재건축 개발에 대한 논의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은마아파트 시세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전 20억5000만원(전용 84㎡기준)에 거래됐던 은마아파트 시세가 최근 16억원대로 내려 왔지만 매수인들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보유세 등 세금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재건축 사업이 진행이 더뎌지면 추가 하락도 불가피 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내부 세대 모습.(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