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러운 美 시선 속…"9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 참여 검토"

by김인경 기자
2026.08.05 15:45:18

정동영 장관 "정부차원 동방경제포럼 참여 적극 추진"
과거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직접 참여해 푸틴 만나기도
북러 밀착 견제하며 우크라戰 후 한러관계 복원 가능하지만
美·EU 대러제재에 쿠팡·대미투자 지연 등 이슈도 발목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우리 정부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색됐던 한·러 외교를 재가동시키는 동시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며 한국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과 소통 물꼬를 틔우겠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가뜩이나 쿠팡 등 한미간 이슈가 산적한 가운데, 서방 주도의 대러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5일 업무보고에 앞서 전날(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한러 관계에 남북관계 고려…정부 차원 참석 고려

5일 통일부에 따르면 전날 정 장관은 업무보고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정부 차원에서 동방경제포럼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동방경제포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극동 지역 경제 개발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투자 유지 목적으로 창설한 회의다. 2015년부터 매년 9월에 개최되는데 올해 역시 다음달 1일~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도 (동방경제포럼에) 갔고, 이후 총리급도 갔으며 장관급 대표단도 간 바 있다”며 “준비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 정부에서는 2016년 박 전 대통령, 2017년 문 전 대통령, 2018년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2019년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하며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공조를 고려해 우리 정부는 참석자의 급을 낮췄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만 참석했다.

우리 정부의 올해 동방경제포럼 참석 추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가속하는 만큼,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이번 포럼에서는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극동 파견 확대, 식량 및 에너지 대북 지원, 첨단 기술이전 등의 실무적 합의와 함께 조만간 개통할 것으로 관측되는 ‘두만강 자동차 전용 도로교’ 활용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석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를 펼치고 있는 북한으로선, 우리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관계 복원은 불쾌할 수 있다. 정 장관은 “북한은 한국의 동방경제포럼 참여에 부정적”이라면서도 “그건 북한의 입장인 것이고 우리는 한·러 관계라는 독자성도 있는 만큼,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문제를 배제해도 푸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포럼인 만큼, 우리 정부가 전격적으로 참석한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색된 대러관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풀이된다. 외교부 역시 이날 하반기 추진과제로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적 소통강화를 내세우기도 했다. 중국과는 지난 1월 한중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달 한중 외교장관 회담도 열 가능성이 큰 만큼,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도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전한 美·유럽 주도 대러 제재는 부담

다만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러시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양국은 미국의 중재로 여러차례 종전 협상을 열었지만 러시아의 도네츠크·루한스크주(돈바스 지역) 전역에 대한 지배권 주장과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부분에서 이견을 줄이지 못한 채 5년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세상을 떠난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유지를 받아 상원에 계류됐던 대러 제재 법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러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다 쿠팡 이슈를 비롯해 한미 원자력 협상과 대미투자 프로젝트 지연 등 현안이 있는 한미관계에 자칫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최근 한미 관계를 둘러싼 이슈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해 나가야 하는 시기”라며 “동방경제포럼은 비교적 정치·외교보다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양자가 아닌 다자 무대라 좀 더 소프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지난 몇 년보단 격이 높은 주러 한국대사가 참석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