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화폐 vs 투기용 상품…비트코인 더 오를까?

by김정남 기자
2021.02.17 22:00:06

비트코인 첫 5만달러↑…시총 1조달러 육박
머스크 비트코인 투자 소식 후 본격 강세장
마스터카드, 모건스탠리, BNY멜론 등 가세
달러 등 화폐 대체 가능성은 여전히 회의적
''닥터둠'' 루비니 "지금 가격, 말이 안 된다"
투자 알린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가 7.7%↓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래의 화폐인가. 아니면 투기용 상품인가. 가상자산 시가총액 1위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 개당 5만달러를 돌파하면서, 비트코인의 미래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옹호론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비트코인 투자 이후 모건스탠리, 뉴욕멜론은행(BNY멜론), 마스터카드 등 주요 금융사들까지 뛰어들면서다.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만큼 2017년 말 폭락장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워낙 큰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동시에 나온다.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를 대체하는 건 너무 먼 얘기라는 회의론은 특히 더 많다.

17일 가상자산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30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1개당 5만1369달러(약 5681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5만달러를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총은 9530억달러(약 1054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단위인 비트(bit)와 동전을 뜻하는 코인(coin)을 합친 용어다. 가명의 프로그래머 나카모토 사토시가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기존 법정화폐(legal tender)를 대신할 새로운 화폐를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2009년 개발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미국이 본격 양적완화에 나선 이후 달러화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더 주목 받았다.

개발 의도와 달리 비트코인은 그동안 화폐와 거리가 멀었다. 비트코인 거래시장을 도박판에 빗댈 정도로 변동성이 큰 상품이어서다. 실제 불과 1년도 채 안 된 지난해 3월 중순만 해도 비트코인 가격은 지금의 10분의1 수준인 1개당 5000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이번 랠리의 시작은 테슬라가 출발 총성을 울렸다. 테슬라가 지난 8일 자사의 전기차 결제에 비트코인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전하면서 4만달러를 밑돌던 가격이 단번에 4만달러 중후반대로 뛰어오랐다. 당시만 해도 테슬라 효과에 따른 일시 폭등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의 미국 내 팬덤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테슬라 이후 굴지의 기업들이 잇따라 뛰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라즈 다모다란 마스터카드 부사장은 테슬라의 발표 직후인 11일 블로그를 통해 “올해 안에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경쟁업체인 비자는 이미 도입 계획을 밝힌 상태다. 같은 날 트위터는 비트코인 결제서비스 제공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BNY멜론이 올해 자산운용사 고객을 위해 가상자산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밝혔고, 블룸버그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강력한 뉴욕시장 후보로 꼽히는 앤드루 양은 “뉴욕시를 글로벌 비트코인 허브로 만들겠다”고 했고, 캐나다 당국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처음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4만달러 후반대를 유지하며 탄탄한 수요를 확인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이날 비트코인 매수를 위해 6억달러 규모 전환사채 발행 계획을 전했다. 마이클 세일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머스크와 공개적으로 대화하면서 비트코인 매수를 독려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비트코인 ‘얼리 어댑터’라고 CNBC는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비트코인 가격 안정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관측이 커졌다. 2017년 말 2만달러 가까이 폭등했다가 몇 달 만에 3000달러대까지 폭락했던 전례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다. 세일러 CEO는 “비트코인은 3년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산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강세장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 요인인 법정화폐 대체 가능성, 즉 비트코인을 돈 대신 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비트코인은 화폐(real currency)가 아니다”며 “ECB는 그걸 사지도 보유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돈세탁 가능성을 들어 비트코인에 대한 추가 규제를 촉구했다. 비트코인은 특유의 익명성 때문에 실제 돈세탁 등 불법 거래에 악용된 전례가 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 거래는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제임스 불러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CNBC에 나와 “비트코인이 오르든 내리든 달러화 경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ridiculous)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며 “그들은 분명 손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원자재들, 심지어 금조차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거의 없다”며 “또 채권 이자 혹은 주식 배당 같은 안정적인 수입마저 없다”고 했다. 이날 비트코인 투자 소식을 알린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7.67% 빠졌다.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마냥 장밋빛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다.

CNBC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금융시장의 가장 심각한 버블로 꼽았다. 월가의 한 금융사 관계자는 “요즘 보이는 시세 자체가 비트코인의 단기 변동성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