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경유착' 전경련이 처음부터 거부했다면

by이진철 기자
2016.12.06 15:33:37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기업들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을 강제모금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9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고, 최순실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사회적 니즈가 있으면 모금활동에 전경련이 나서는 것을 계속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 후로 3개월이 지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푯말로 비난하고 있다.

이승철 부회장은 6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당시 그런 청와대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답해 완전히 다른 180도 말바꾸기를 했다.

이 부회장도 처음에는 청와대와의 관계를 생각해 단순한 모금책 역할을 하면 될 줄 알았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과거 수차례 다짐에도 불구, ‘정경유착’에 또다시 연루하게 됐고 이제는 존폐여부가 현실로 맞은 처지가 됐다.

전경련의 말바꾸기와 안이한 대응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9개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들은 전경련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회장단의 멤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국정조사에서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 기부금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재계 총수들은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청문회에서 “정부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하면서도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며 거듭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혔다.

전경련은 이전에도 수차례 ‘정경유착’ 주범으로 몰려 위기를 맞았던 과거를 반면교사 삼지 않았다.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개별기업이 쉽게 하지 못하는 청와대의 기금출연 요구를 강하게 거절하고 애초부터 ‘정경유착’에 선을 긋는데 총대를 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경련의 존폐위기는 구태를 벗지 못해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