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절반이 의사증원 찬성한다"는데…권익위 설문조사 논란
by정다슬 기자
2020.09.01 18:07:32
"의사는 국민 아니냐" 일부 의사 반발하며 '일반국민'으로 답해
공공의대 설립 예정 지자체 공무원 동원 정황도
별도 설문조사에서는 "지역 의료원 강화"가 가장 응답 많아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1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한 결과, 국민의 56.5%가 의사 증원에 찬성한 반면 의대생·전공의·개원의 등 의사 직종 종사자는 8.5%에 불과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등 논란 속에 나온 결과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정책에 대한 찬반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정부의 공식적인 첫 설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실제 지난달 11~25일 권익위 홈페이지 ‘국민생각함’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는 총 6만 9899명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앞서 권익위가 실시한 부동산 대책 설문조사(7월 23일~8월 5일, 1만 2114명)의 5배가 넘는 참여율이다.
그러나 높은 관심만큼 결과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대 설립 예정지인 특정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 이해 당사자들이 대거 조사에 참여한 정황이 드러나는가 하면, 의사들 가운데서는 이같은 조사방식에 항의하며 본인의 신분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례도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설문조사 문항 중 ‘응답자의 직업’ 선택항목으로 ‘의사 직종’(대학병원 종사자·개원의·전공의·의대)과 ‘일반 국민’을 분리한 것에 일부 의사들은 “의사는 국민이 아니냐”며 일반국민을 선택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조사결과로는 의사 직종 관련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13%(8862명)이라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일반국민 쪽에 섞여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의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자 권익위는 “본 조사는 정책의 당사자나 수혜자의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로, 그 결과가 왜곡되거나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안들은 분석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앞서 7월 진행된 제1차 권익위 설문조사(‘부동산 대책’)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표현이다.
실제 권익위는 보도자료에서 “의사 수 확충은 불필요하다”고 답한 일반 국민 응답자 31.9%가 반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일반 국민 응답자’ 가운데는 사실은 의사 직종 종사자이면서도 일반 국민으로 선택한 이들도 있어 결과가 왜곡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권익위의 설명이다.
의사 수 확충이 불필요하다고 선택한 이들은 의사 직종, 일반 국민 모두 “현재도 의사 수가 충분하다”, “의료 질 저하”를 주요한 이유로 꼽았다.
반면 “의사 수 확충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과 관련해서는 일반 국민과 의사 직종으로 나뉘어서 그 이유를 비교했다.
일반 국민 응답자의 54.9%가 ‘지역 내 공공의대 신설’을 꼽고 그다음 ‘기존 의대정원 확대’(43.9%)을 선택한 반면, 의사 직종 응답자는 ‘기존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51.2%로 가장 많았다. 공공의대 신설은 43.6%였다.
세력 싸움이 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관련 설문조사와는 다르게 비슷한 시기 실시된 ‘보건 의료체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중앙·지방정부가 중심이 된 지역 공공의료 기관을 설립 강화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아 눈길을 끈다.
권익위가 지난달 11~27일 실시한 이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2476명 중 44.1%(이하 복수응답 포함)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문제점으로 ‘지역간 의료 불균형’을 꼽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특정분야 의사 부족’(39.9%), 건강보험 수가체계(36.2%)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지역간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6.4%는 지역의료원의 역할을 먼저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인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37.8%)과 의사 단체가 주장하는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편’(20.0%)는 뒤로 밀렸다.
지역 공공의료기관 설립·강화를 주문한 이들은 “현재 지역에는 34개 의료원이 있다”며 “지역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지역 의대와 연계해 대학병원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단순한 급여 상승이 아닌 인프라(장비·인력) 등의 확충을 주문한 것 역시 눈에 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도 “의대 정원을 늘리고 10년 이상 근무토록 하면 의료 불균형은 크게 해소된다”면서도 “문제는 이들의 커리어(경력)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로드맵이 있는가이다. 그것이 없다면 10년 후 모두 수도권으로 갈 것”이라고 말해, 지역에서도 자긍심을 가지고 개인 능력을 늘릴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특정 분야 의사부족 해소방안에 대해서는 ‘기피과목 건강보험의 수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51.5%로 가장 많았다. 기피과목에 대한 의사 행위료를 인상하고 경증 질환자가 3차 병원 방문하면 환자 부담률을 높여 업무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금처럼 요양기관 종별 구분 없이 동일 수가를 적용하면 지방에서는 기피과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공의료기관 설립·강화(24,8%)를 주문한 이들은 “수가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특정 분야를 기피하는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이를 막기 위해 공공의대생이 아니라 공공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흉부외과처럼 수가가 높지만 현실적으로 의사 한 명이 개업하기 어려운 분야를 위해 공공병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대정원 확대와 지역 의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필수과목 전문의가 없어 협진이 어렵다. 지방 종합병원과 환자들을 위해서는 지역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는 의사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권익위는 “정부와 의사 직종 모두 ‘지역 간 의료 불균형’과 ‘특정 분야 의사 부족’이 문제라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다만 그 해결방안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며 “권익위는 이번 의견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체계와 관련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