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에서 몸값 낮춘 돈스코이호…풀리지 않는 의문들

by이명철 기자
2018.07.26 17:07:46

신일그룹, 신일해양으로 변태…최용석 “내가 새 대표”
“금괴 확인 못했지만 역사적 가치…인수 추진할 것”
류지범·류상미,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관계 의문 여전해
제일제강 주가 조작, 신일골드코인 과장 판매 의혹도
논란 일으켰지만 책임자는 아무도 없어…피해만 양산

최용석 신일해양기술(옛 신일그룹) 대표가 26일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명철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150조원짜리 금괴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등장하면서 때 아닌 ‘보물선 열풍’이 불었다. 해당 선박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신일그룹은 전자화폐 불완전 판매와 주가 조작, 사기 등의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신일그룹의 새로운 대표라고 등장한 인물은 사명을 바꾸고 새로운 경영진과 함께 선박 인양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시장에서 제기되던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지만 아직도 궁금한 점들은 풀리지 않는 상태다. 허황된 청사진에 2차, 3차 피해자만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만 더 커지고 있다.

‘보물선’으로 불리는 러시아 침몰선 돈스코이호 열풍이 시작한 시기는 17일 신일그룹이 이 선박을 발견했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후 약 열흘간 돈스코이호의 진위 여부와 보유 재물의 가치, 신일그룹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오갔다.

26일 기자회견을 연 신일그룹의 전면에는 새로운 대표라는 최용석 씨피에이파트너스케이알 대표가 등장했다. 그는 “신일그룹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으로 싱가포르의 신일그룹, 신일광채그룹, 신일골드코인과는 관계가 없다”며 “사명은 신일해양기술주식회사(이하 신일해양)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처음 150조원 가치의 금괴가 있을 것으로 알린 점에 대해서는 “탐사 계획 이전부터 사용되던 문구를 검증 없이 인용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금화나 금괴 존재 여부와 양은 파악할 수 없지만 의미 있는 재산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인양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렸다.

각종 의혹에 대해 ‘관계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의문점은 여전하다. 우선 처음 홈페이지를 통해 돈스코이 발견 사실을 홍보하고 전자화폐 형태의 신일골드코인(SGC)을 판매한 류지범씨, 신일그룹 대표라고 알려진 류상미씨와 신일그룹과의 관계다. 최 대표는 “류상미씨가 신일그룹 설립 당시 70% 지분율로 최대주주인 것은 맞지만 대표가 바뀌면서 지분율이 35%까지 줄었다”며 “류지범씨는 류상미씨와 인척 관계로 알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개인적으로 홈페이지 홍보나 신일골드코인 판매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일제강 역시 류상미씨와 본인 개인 명의로 인수에 나선 것일 뿐 신일그룹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자화폐나 상장사 인수 모두 개인의 문제일 뿐 현재 신일해양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류상미씨 등을 ‘1기 이사진’이라고 표현하며 본인으로 주축이 된 ‘2기’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신일그룹이 단순히 경영진과 이름을 바꿨다고 관련이 없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우선 기자회견 전까지 대부분 입장과 돈스코이 관련 자료들이 신일그룹이 이름만 같은 곳이라고 주장하는 류지범 대표의 싱가포르 신일그룹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최 대표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류지범씨측이 처음 돈스코이 탐사를 시작했다가 사회적 무게 때문에 신일그룹을 새로 발기했다”고 밝혀 신일그룹의 모태는 류지범씨측임을 시인했다.

150조원대 재물은 사실상 존재 불가능함을 인정했지만, 신일그룹은 여전히 금괴나 금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최 대표는 “단단한 밧줄로 고정된 여러 개 상자묶음을 확인했다는 현장 탐사원 보고와 자체 파악한 역사 자료 등을 미뤄 생각할 때 의미 있는 재산적 가치가 충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 등에는 금괴나 금화가 담겼을 것으로 보이는 상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돈스코이에 재물이 있다는 합리적인 증거나 추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를 인양하는데 300억원 가량이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인양 과정에서 유물이나 금괴 등을 발견하면 추가로 보증금을 내고 발굴하겠다는 계획인데 수백억대 자금 조달 여부도 확실치 않다. 신일그룹은 자본금 1억원의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자본력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인양 자금을 투자자를 모집해 동원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돈스코이 발견 소식에 주식시장에서는 상장사인 제일제강(023440)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이달 5일 신일그룹 대표를 맡던 류상미씨가 최용석 대표와 함께 제일제강 최준석 회장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져서다. 제일제강은 ‘보물선 테마주’로 분류되며 지난 17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제일제강의 신일그룹 연관성에 관심이 쏠렸지만 최 대표는 기업간 관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경영 컨설팅 기업인 씨피에이파트너스를 이끌며 류상미씨로부터 인수할만한 상장사 검토 제안을 받았고 제일제강 인수를 추진하게 됐다”며 “경험이 많지 않은 류상미씨측에서 혼자 경영을 이끌기 힘들다고 권유해 함께 개인 출자를 통해 인수를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간 인수가 아닌 류상미·최용석 개인의 인수로, 돈스코이와 제일제강은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기가 절묘하다. 신일그룹은 6월 1일 설립했고 제일제강 인수를 검토한 시기는 6월 5일께다. 제일제강 주가는 최대주주 양수도 계약을 맺기 전인 3~4일 20% 이상 급등한 바 있다. 이때부터 돈스코이 발견 소식이 나오기 전인 13일까지 9거래일간 주가 상승폭은 115%에 달한다. 개인 투자라고 치부하기에는 신일그룹의 움직임과 제일제강 주가간 연관성이 짙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최 대표는 이를 두고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다는 뜻의 ‘오비이락’이라고 표현했다. 신일그룹 설립 후 상장사를 물색하다가 제일제강과 연이 닿았고, 마침 인수 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돈스코이를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제일제강과 신일그룹은 관계가 없고 현재로서 제일제강이 돈스코이 인양에 참여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제일제강 경영진이 바뀌고 향후 주주들이 원할 경우에는 (인양 참여 여부를) 검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미 금융감독원에서는 신일그룹측의 제일제강 주가 조작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최 대표는 “본인은 물론 씨피에이측 관계자, 신일그룹 기존 1기 경영진까지 제일제강과 관련한 모든 사람들은 불공정한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사태와 관련한 모든 관계자들이 제일제강 주식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는지는 금융당국 조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일제강 주가와 함께 돈스코이 국제거래소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된 전자화폐 신일골드코인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당초 신일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홈페이지에서는 다단계 형태로 신일골드코인을 판매했다. 일각에서는 150조원 보물선 인양과 암호화폐공개(ICO) 상장 가능성을 앞세워 투자자를 끌어들여 수백억원대의 매출을 거뒀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기도 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코인을 사서 피해를 입었다며 판매자측 처벌을 촉구하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신일골드코인 또한 신일그룹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류지범씨가 류상미씨 명의를 이용해 홈페이지를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기존 이사진들이 진행했던 것이지 현재 새로 태어난 신일해양은 이와 무관하다는 논리다. 싱가포르의 신일그룹도 현재 신일그룹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회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류지범씨가 현재 신일그룹의 모태로 알려진 상황에서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현재 신일그룹이 단순 이름이 같아 생긴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연관성이 짙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금도 최 대표가 류상미씨와 제일제강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관계임에도 단순히 신일골드코인이 류씨측의 단독 행동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신일골드코인을 판매한 기존 이사진과 행정상으로 분리해놓음으로써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내놓고 있다.

최 대표 말대로 제일제강 인수 과정이 정상적이고 관계자들의 주가 조작 여부가 발견되지 않으며 신일골드코인과의 관계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당장 금융당국이나 검찰 수사망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그 역시 “순수한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인데 너무 많은 의혹을 받아 심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신일그룹, 이제는 신일해양의 진심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문제는 보물선 사태가 야기한 논란의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것이다. 이미 150조원대의 금괴 매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고 제일제강 주가는 급등락하며 피해자를 양산한 상태다. 아직 알려진 바 없지만 신일골드코인 판매 피해 사례도 속출할 것으로 우려를 사고 있다.

현재 신일해양측의 입장대로 150조원 보물선이라는 홍보나 신일골드코인 판매가 기존 경영진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이들에 대한 책임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류상미씨를 포함한 ‘1기 이사진’들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정확한 실체가 아직까지도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 대표는 “만일 신일골드코인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가 있다면 류상미씨측이 보유한 신일그룹 지분 35%를 통해 보상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보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류상미씨가 동의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인터뷰 요청이나 언론 대응 창구에 대해 “씨피에이파트너스 대표 번호로 전화하거나 팩스를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앞으로 직접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