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가결]경제안정에 주말잊은 기재부…"이헌재식 리더십 보여야"(종합)

by박종오 기자
2016.12.09 18:40:14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경제부처도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사실상의 경제 콘트롤타워인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는 등 경제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관가 안팎에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발휘했던 리더십을 재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8시 30분 정부 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을 소집해 최근 경제 상황 평가와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총리가 탄핵안 가결이 경제 주체의 불안감으로 확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와 3대 신용평가기관, 해외 투자은행 등에 유 부총리 명의의 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탄핵 정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국외 투자 유치를 위한 정책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10일 오전에는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주재로 관계기관 합동 비상경제대응반 회의를 개최한다. 유 부총리는 이날 경제 5단체장과 비공개로 오찬 간담회를 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동 등 양대 노총 위원장과도 연이어 면담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국에 있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참석할 예정”이라며 “재계와 노동계 의견을 듣고 협조를 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11일 외신 기자 간담회와 기재부 확대 간부회의를 소화하고, 12일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 경제 정책을 지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계획이다.

이번 탄핵 대응을 위해 기재부 등 경제부처 관료들이 참고하는 ‘롤모델’은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던 때다. 당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즉각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는 우리 경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며, 그동안 우리는 경제가 정치의 영향을 덜 받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며 “경제 문제 만큼은 총리의 뜻을 받들어 경제부총리로서 제가 책임지고 국민 생활 안정과 대외 신인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당일 밤에는 이 부총리 본인 명의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와 3대 신용평가기관, 해외 투자은행 등 1000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한국 재경부 장관이 드리는 글(Korea: Finance Minister’s Message)‘이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탄핵 정국이 한국 경제와 정부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며, 기업 투자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더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탄핵 가결 다음날인 13일 오전 8시에도 정부 과천청사에서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각 부처 현안과 조치 계획을 점검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당시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적 불안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기민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었다.

기재부 등 경제부처 내부에는 이번 탄핵안 가결이 “차라리 잘 됐다”고 평가하는 기류도 있다. 탄핵 이슈가 이미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었던 만큼, 오히려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선을 긋고 있다. 한 기재부 과장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도 주가 등 시장 지표가 2~3일 정도 내려가다가 다시 회복하는 등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경제는 결국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위기 대응 이후의 정책 행보에는 적지 않은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당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탄핵안 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 구조조정 이래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며 “즉각적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에게 무언갈 요구하거나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기보다는 재벌개혁, 정경유착 등 촛불 민심에서 나온 과제를 어떻게 다룰지 지켜보겠다”며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추 대표는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현 금융위원장) 문제도 당내에서 이견이 많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며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현 유일호 부총리와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의 어정쩡한 동거도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