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민갑룡 경찰청장 취임사 "국민·동료 기대 저버리지 않겠다"
by김성훈 기자
2018.07.24 17:45:00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다음은 민갑룡(53) 경찰청장의 취임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경찰가족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스물 한번째 경찰청장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개인적인 영예에 앞서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 순직하신 선배·동료들을 모신 경찰기념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영예로운 이름으로 그대의 사랑과 희생을 미래의 가슴에다 경건하게 새겨노니 온몸으로 실천한 숭고한 정신조국의 가슴 한가운데 영원히 살아있으리” 기념비에 새겨진 추모시가 소명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 숱한 선배와 동료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순직한 영양경찰서 고(故) 김선현 경감이 떠올랐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평생 경찰로 살았고 끝내 경찰관으로서 맞이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어떤 마음이었을 지를 깊이 헤아려보며 다짐했습니다.
임기 동안 오로지 국민과 현장만을 바라보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국민과 동료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경찰청장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자랑스러운 경찰 동료 여러분!
지금 경찰은 전례 없이 중대한 변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경찰의 변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향하는 청사진을 밝히고 뼈를 깎는 개혁의 노력을경주해 왔습니다. 이제 그간의 개혁과제들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 경찰이 달라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지난 6월 최초로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이 마련되어 사법민주화 원리가 작동되는 선진수사구조로 변화하는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경찰은 수사 개시에서 종결까지 온전한 책임을 가진 수사의 주역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경찰 수사의 중립·공정·전문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말끔히 걷어내야 합니다. 정부 조정안 취지에 맞추어 수사 현실도 하나하나 바꿔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국민적 열망을 담은 민주적 수사구조개혁이 국회에서 입법적 결실을 맺도록 함께 해 나가야겠습니다.
자치경찰제 도입도 차질없이 준비해 나가야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치안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지방 분권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 실정에 맞는 최적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야 합니다.
최근 경찰개혁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의견이 표출되고 있고 경찰 전반에 걸쳐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파고(波高)가 거셀수록 차분히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모두의 중지(衆智)를 모아 슬기롭게 길을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격변의 시기에 전임 이철성 경찰청장께서 훌륭한 경찰운영 방향을 세워 조직을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이정표를 따라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하여 다듬고 넓히며 더 단단히 다져가겠습니다.
인디언들은 바삐 말을 달리다가도 영혼이 뒤쫓아 오지 못할까 봐 잠깐씩 멈춰 기다린다고 합니다.
정책과 제도를 새롭게 펼쳐 나가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경찰의 근본’을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와 지향점을 가지고 일하는가?”란 물음에 15만 경찰이 같이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와 도약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의 경찰 정신을 구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근대 경찰의 창시자 로버트 필 경은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원칙을 천명하였습니다.
경찰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항상 시민과 함께 해야 합니다. 경찰의 힘은 시민의 지지와 협력으로부터 나옵니다. 경찰관 개개인이 철저히 시민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경찰은 공동체 시민을 대표해서 안전과 질서를 수호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경찰은 항상 보편적 시민정신에 입각해서 일을 해야 하며 그것이 곧 민주·인권·민생 경찰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런 시민에 대한 약속의 상징이 바로 제복(制服)입니다. 경찰은 제복의 상징에 맞게 시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어렵거나 평온이 위협받는 사회의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근 여성들이 제기하는 ‘폭력과 차별의 철폐’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겠습니다. 경찰은 누구보다 여성들이 느낄 극도의 불안과 절박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이 책임을 총괄하는 전담 대응기구를 신설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여, 불법촬영 등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인격을 파괴하는 범죄와 불법을 근절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시민이 범죄로부터 피해를 당하면 ‘경찰은 시민을 지킨다’는 약속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을 먼저 새겨야 합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삶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보호 및 지원 시스템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야겠습니다. 경찰이 아동·청소년·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최우선적으로 살피고 돌봐야 하는 것도 같은 뜻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사구조개혁, 자치경찰제 등 산적한 개혁과제도 이 같은 대의(大義)를 기준으로 풀어나간다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찰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서는 기존에 일하던 관행과 경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의 일하는 모습이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공동체와 함께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스마트 치안’으로 바꿔나가야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과 사물, 데이터 등이 고도로 융합되는 초연결사회가 도래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미래학자는 “모든 것이 연결되자 모두가 위험해졌다”고 했습니다. 치안 문제에 대한 과학적·통합적 접근도 긴요해지고 있습니다.
치안과 관련된 여러 현상과 다양한 증상들을 종합적으로 진단·분석하여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 소지를 찾아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경찰의 활동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대내외 파트너십(Partnership)을 한층 강화해야겠습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기능 간의 벽을 허물고 수평적인 연결(Connection)·조정(Coordination)·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총체적인 조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치안동반자인 지역 주민과 함께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는 공동체 치안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는 한편, 관련 기관·단체 등과도 역할을 분담해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전(全) 사회적인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한정된 경찰력을 가지고 주민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자 전략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끼리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정작 국민이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치안활동 전반에 걸쳐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여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야 합니다. 절차적 정의는 주어진 형식과 단계만 잘 지킨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어린 마음과 태도를 바탕으로 상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먼저 그 어떤 사소한 목소리라도 적극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하는 일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국민의 바람을 들어보았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공정한 경찰’을 우선 주문하셨습니다.
법집행의 정당성은 절차와 과정이 공정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확보됩니다. 나아가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면 국민들은 깊은 신뢰로 화답할 것입니다.
이것이 경찰뿐 아니라 사회를 한층 정의롭게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조직 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급부서와 상사는 일을 해 나갈 때 절차적 정의에 입각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일의 목표나 방향에 대해 공감하면 조직과 상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업무 지침·규칙 등도 잘 지키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업무성과로 이어져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해나갈 바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치안 현장에서는 경찰관 한 명 한 명이 곧 법집행 기관입니다.
현장에 보다 활력을 불어넣어 경찰관 개개인이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법집행을 주저하거나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고도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법적 기반을 확충하고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겠습니다.
경찰관의 인권도 소중히 지켜 나가겠습니다. 경찰은 다른 직업에 비해 더 큰 헌신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또한 제복인으로서 행동에 있어서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희생을 무릅쓰고 위험에 뛰어드는 경찰관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선진 경찰 수준으로 근무 여건과 처우를 적극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경찰 조직을 ‘통제하는 일터’가 아닌 ‘존중하는 일터’로 바꿔 나가겠습니다. 청장인 저부터 권위를 내려놓겠습니다. 지휘관의 존재 이유를 현장을 안아주고 격려하는 것에서부터 찾겠습니다.
현장의 동료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건강한 조직문화를 해치는 불합리한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해 나가겠습니다. 본청과 지방청은 현장을 지원하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재정립하고, 일선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전국의 경찰 동료 여러분!
우리 경찰이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기회는 항상 위기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 변화에 대한 도전과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 시작은 경찰이 지향해야 할 바를 바로 세우고 일에 대한 관점과 방식을 시민 중심으로 바꿔 나가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책을 실행하거나 국민을 마주할 때 마다 하나하나 투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한 걸음 한 걸음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서 이번에야 말로 ‘우리 경찰이 시민의 경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아내야 합니다.
청장인 저부터 달라지겠습니다. 말로만 하는 청장이 아니라 현장으로 달려가고 실천하는 청장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 책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국민들 기억에 남는 경찰, 조직이 먼저 존중해야 할 경찰관은 우리 동네를 누비며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경찰이 자긍심과 책임감이 넘치는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 따뜻한 인권경찰, 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15만 경찰 모두가 힘을 모으면 그 꿈은 곧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힘찬 도전이기에 마음 든든합니다. 지금도 병상에 있는 동료들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경찰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