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통상임금 신의칙, 잣대 엄격해야"…불확실한 기준, 갈등 불씨

by노희준 기자
2019.02.14 17:16:22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 노동자 승소 취지 파기환송
신의칙 예외 규정, '전가의보도' 안 돼
엇갈린 하급심 판단, 논란 여전할 듯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법조-대법원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통상임금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信義則) 적용시 경영상 어려움은 엄격한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신의칙이란 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 사이의 권리 행사는 신뢰에 따라야 한다는 추상적인 민법상 원칙이다.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더라도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면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의 불씨를 제공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박모씨 등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씨 등은 2013년 3월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연장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해 차액을 더 지급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는 정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법정수당을 다시 산정함에 따라 임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것이 기업 경영이나 존립에 어려움을 초래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기업의 경영상황은 여러 경제·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법정수당 추가 청구를 못하게 한다면 이는 경영상 위험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신의칙은 예외를 규정한 사항이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워 추가 임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라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박씨 등이 청구한 법정수당은 4억원 가량으로, 이는 시영운수 연간 매출액의 2~4%이고 지난 2013년도 총 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 2013년 기준 이익잉여금만 3억원이 넘기 때문에 추가 법정수당을 상당 부분 부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1·2심은 회사가 추가로 부담하게 될 법정수당을 약 7억8000만원으로 추산해 “예측하지 못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돼 신의칙에 반한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박씨 측 상고로 대법원은 지난 2015년 10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3년4개월 심리 끝에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연간 매출액과 총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 적용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엇갈린 판단을 내려왔던 하급심의 불확실성은 그대로 남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세종 김동욱 변호사는 “신의칙은 예외적인 것이라 함부로 적용하지는 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신의칙과 관련해 새로운 세부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이에 따라 신의칙 적용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을 잠재우기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노동사건 전문인 한 변호사는 “신의칙 관련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난 2013년 기존 대법 법리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통상임금 관련)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개별 재판부 입장에선 사안별로 추가 법정수당과 매출액,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을 비교해 판단해야 하는 과제가 고스란히 남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영 상태와 관계 없이 신의칙을 이유로 무작정 소급 청구를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경우도 1심과 2심에서 신의칙 판단이 엇갈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