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피해자 앞에서 눈물 흘린 판사…"법원을 다시 믿어줘 감사하다"

by한광범 기자
2018.04.30 16:27:38

''보안사 고문 수사관'' 위증 재판서…피해자 진술 듣고 ''울먹''
"인권의 최후의 보후인 법원이 과거 제역할 다 하지 못해"
檢, ''고문 수사관'' 고병천에 징역 1년 구형…"피해자 고통"
피해자들 "사건 본질은 위증 ...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용공조작 사건 재심에서 ‘고문이 없었다’는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된 고문 수사관 사건 담당 판사가 피해자들에게 “(과거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법원을 다시 한번 믿어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는 30일 보안사령부 대공처 수사관이었던 고병천(79)씨 위증 사건 결심 공판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고문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은 후 한동안 말없이 눈물을 글썽였다. 이 판사는 “당시 고문이 있었고 피해자들은 간첩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형을 몇 년씩 살았다”며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제 역할을 다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께서 다시 그런 법원이 이 사건을 심판하고 결론을 내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다시 한번 믿어주는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며 “그 믿음을 정말 무겁게 받아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심리해 결론을 내보겠다”고 약속했다.

고씨는 1970~80년대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사건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소속 수사관으로 유학생들을 직접 고문했다. 그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도 “고문한 적이 없다”·“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문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로 법적 처벌을 피해갔던 그는 지난 2010년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문을 한 적이 없다”는 위증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대한 면피성 사과로 일관하다 지난 2일 재판 중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검찰은 30일 고씨에 대해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한 가혹행위와 고문으로 고문 피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고씨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사건에서도 허위진술을 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어렵게 했다”며 “고씨의 위증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 등을 고려해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고씨는 최후 진술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하다. 진심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윤정헌씨를 비롯해 모든 분들에게 사죄한다. 저의 반성과 사과의 말이 부족하더라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재판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입국한 고문 피해자들은 고씨의 최후 진술이 끝난 후 발언 기회를 얻었다. 윤정헌씨는 “검찰의 구형이 너무 가볍다. 징역 100년이나 200년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안사 고문 수사관 중) 양천구청장이었던 추재엽씨를 포함해 두명만 징역형을 살았다”며 “고씨가 보안사 전체 대표라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엄한 처벌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박씨는 “결혼 3개월 차에 붙잡혀 징역 10년형을 받고 5년 복역 후 석방됐다. 석방 후 고씨가 저를 불러 ‘일본에 가더라도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며 “고씨가 유죄를 받는다면 아직도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 재심 신청의 힘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종건씨는 “이 사건의 본질은 위증이 아닌 고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대한 위법행위인 고문에 대해 다투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이라며 “법원이 제대로 된 사회적 역할을 해주지라 믿고 입국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