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서비스 보상, 맞아?"…카카오 사태가 던진 화두

by김국배 기자
2022.11.15 18:06:53

정치권 압박 못 이겨 "검토하겠다" 했지만
무료 이용자 보상, 국내외 선례 없어
도의적 책임 지겠다고 과도한 보상하다 나쁜 선례될라
"무료 서비스 개발 위축" 우려
글로벌 기업과 역차별 문제…경영진 배임 휘말릴 수도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카카오 먹통 사태’ 여파로 무료 메신저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논쟁적 화두로 떠올랐다. 카카오가 정치권 압박 등에 못 이겨 “무료 서비스 이용자에게도 보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정작 업계에선 “카카오톡 같은 무료 서비스 장애까지 이용자 보상을 요구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료 이용자 보상은 업계에 ‘부담스러운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카카오로선 딜레마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전날 이번 서비스 장애 보상을 위한 ‘1015 피해 지원 협의체’를 구성하며 피해 보상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달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지 한 달만이다. 협의체에는 공정 거래·소비자 전문가, 소상공인연합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소비자연맹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무료 서비스 보상안을 내놓으라’는 정치권의 압박과 도의적 책임을 느끼는 카카오가 피해 보상 논의를 본격 시작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우선 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8월 30일 국내에서 1600만명이 사용하는 백신 프로그램 ‘알약’ 무료 버전이 12시간 동안 장애를 일으키자 일부 이용자들은 “컴퓨터가 먹통이 돼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며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알약 운영사인 이스트시큐리티는 오류의 원인이 된 업데이트 배포 프로세스 개선 등의 대책을 내놨을 뿐 직접적인 이용자 보상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알약 무료 버전은 설치 시 ‘제품의 오작동으로 인한 업무 중단, 사업 정보·금전 소실 등’에 대해 면책 동의를 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년 전인 202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결제·충전 등 서비스 오류를 일으킨 네이버페이 측도 구매한 상품 배송이 지연된 이용자와 광고 사업자에 한정해서 보상을 진행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간 발생한 주요 서비스 장애 사례를 보면 일부 유료 이용자를 제외하곤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 텔레그램(1월), 트위터(7월), 구글·유튜브(8월)에서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지만 보상을 언급한 곳은 없다. 메타 정도가 지난해 10월 발생한 장애와 관련해 유료 서비스 이용자인 광고주에 서비스 중단 시간만큼 광고비를 면제해줬다.



플랫폼 기업의 사례가 없다 보니 그나마 비교가 되고 있는 곳이 KT다. KT는 2018년 아현지사 화재 사고로 이동통신, 인터넷, 유료방송 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소상공인 중 카드 결제·주문을 못해 영업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1인당 40만~120만원을 지급했다. 약관에 없는 보상이었다. 보상 방식을 놓고 크게 고심하고 있는 카카오도 KT 사례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 측 약관에는 무료 이용자 보상 의무가 없다. 카카오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무료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과도한 보상을 할 경우 향후 부담스러운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무료 서비스에서 장애가 나면 약관 등 법리적 규범이 아니라 여론에 따라 보상하는 관행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과도한 보상을 집행할 경우 경영진이 배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역차별 문제도 있다. 망 이용료를 내지 않기 위해 소송을 불사하고 여론전까지 나서는 구글·넷플릭스의 행태를 보면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다고 한들 보상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번 보상 논의가 ‘카카오 문제’를 넘어 ‘업계 전체 문제’로 인식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무료 서비스 이용자 배상은) 장기적으로 국내 스타트업과 IT 기업의 무료 서비스 개발·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일관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구글만 ‘망 사용료’ 납부를 거부하는 것처럼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카카오가 약관과 무관하게 배상을 할 수는 있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의 수 등은 앞으로 협의체에서 집계가 될 전망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법적으로 ‘특별손해’에 해당하는 영업 피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2014년 3월 SK텔레콤에서 5시간 40분 가량 장애가 발생했을 때 대리 기사 등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1·2·3심 모두 패소한 판례도 있다. 법원이 약관에 따라 배상하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IT 전문 법률가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특별 손해는 피해를 입힌 사람이 그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어야 배상이 가능하다. 또 손해를 회피할 대체 수단이 있었는지(카카오톡이 유일한 영업수단이었는지) 등을 판단한다”며 “카카오는 데이터센터 화재의 피해자이기도 한 만큼 특별 손해를 넓게 인정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