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경영 하라면서 대표이사 자리 뺏는 나라

by피용익 기자
2019.03.27 19:20:03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대표이사직 박탈에 재계 불안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결국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를 뺏겼다.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상정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한 영향이 크다. 정부가 기업 총수의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와중에 책임경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표이사 자리를 공적연금이 빼앗은 셈이다. 20년 동안 대한항공을 이끌어 온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박탈을 보며 경영계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본사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총을 열고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관심이 집중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003490)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찬성률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지분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전날 예고한대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데다 참여연대가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이면서 소액주주들이 ‘반대’ 표로 기울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 정착,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의 서울 개최 등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조 회장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를 통한 책임경영인데, 조 회장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반대로 이사 등재에 실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등기 임원을 맡지 않으면 경영권을 행사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책임경영과 멀어진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는 ‘갑질’로 문제가 됐던 조 회장 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주주들의 이익 대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반대 역할에 앞장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기업의 경영 개입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 경영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조 회장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현재 법원으로부터 어떠한 확정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는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 대신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본질적인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