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원재자값 끌어올리는 키워드 셋…바이든·친환경·백신
by이준기 기자
2021.02.09 17:08:04
친환경 정책에 '바이든 효과'까지
월가 '장기적·구조적 강세장' 선언
유가 60달러 돌파…강세장 베팅
인플레, 긴축 불가피…우려 목소리
|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품창고에서 열연 코일 제품들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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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준기 최정희 기자 김정남 뉴욕특파원] 금속·곡물 등 원자재 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고공 행진이다. 월가(街)에선 향후 10년의 장기적·구조적 강세장을 의미하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귀환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전 세계적 탈(脫) 탄소 정책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종식 기대, 그리고 미국의 이른바 ‘바이든 효과’까지 겹친 일종의 경기회복 선행 효과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물경제 회복 전 인플레이션이 먼저 엄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찮다.
금속·곡물 가격은 무섭게 뛰고 있다. 대표적 경기민감 원자재로 분류되는 구리 가격은 톤당 8000달러 선으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철광석 가격도 톤당 160달러 선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친환경 전기차 인기 덕에 배터리 소재인 코발트와 니켈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올해 들어 코발트와 니켈 가격은 각각 34%, 6% 이상씩 뛰었다.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은 전기차 확대를 예고한 상태다. 대두·밀 등 국제 곡물 가격도 2014년 이후 가장 높다. 옥수수 가격은 1부셀(27.2kg) 당 5.63달러로 작년 4월 대비 70% 이상 급등했다.
기저에는 ‘바이든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메가톤급 부양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하원은 부양안을 과반 찬성만으로, 즉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결의안을 가결했다. 한국 돈으로 2130조원에 이르는 돈이 풀리는 게 임박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번 원자재 가격 상승 흐름을 두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초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골드만삭스는 ‘원자재 랠리’가 돌아왔다며 사실상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전 세계적 친환경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크리스 미드젤리 수석애널리스트는 “친환경 정책에 따른 수요 증가는 니켈, 코발트 등의 가격을 계속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한때 마이너스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국제유가 강세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국제유가 기준 물인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4월물 브렌트유는 이날 60달러선을 돌파했다. 브렌트유는 종가 기준으로 팬데믹 여파 전인 지난해 1월24일 60.69달러를 기록한 이후 60달러를 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다. 원유시장은 팬데믹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주요 헤지펀드들이 최근 들어 유가 강세에 베팅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올해 높게는 배럴당 80달러까지 브렌트유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공급부족이 예상될 때 나타나는 백워데이션(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낮은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두고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강세”(유나이티드 ICAP의 스콧 셸턴 애널리스트)라는 분석이 대세다.
작금의 원자재 가격 상승 흐름이 일시적이 아닌 추세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세지자 한편에선 인플레이션 시대의 전조라는 분석도 많다. 이런 가운데 이날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팬데믹 이후 2%를 돌파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리처드 번스타인 어드바이저스의 마이클 콘토풀로스 이사는 “30년물 금리가 2%를 넘을 때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며 “이는 경제성장률의 분명한 선행지표”라고 했다. 씨티은행은 보고서에서 “30년물 금리가 중요한 기술적 수준을 넘어섰다”며 “금리 전망치가 2.44%에서 2.47%까지 열리게 됐다”고 썼다.
인플레 우려는 이미 시작됐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 기고 및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엄청난 불확실성이 있는 와중에 2차 세계대전 때와 가까운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는 건 우리가 한 세대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인플레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며 “부양안 계획은 인플레와 금융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인플레 위험이 커지면 미 중앙은행(연준·Fed)의 금리인상 등 긴축은 뒤따를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자산가격은 충격이 불가피하다.
물론 대규모 추가 부양안을 추진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 우려는 팬데믹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경제적 손실에 비하면 작다. 미국은 인플레 우려에 대응할 도구가 있다”(재닛 옐런 재무장관)고 반박한다.
톰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부양안이 미 경제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몰고 올 수도 있지만 미 경제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에도 직면해 있다”고 바이든 행정부를 측면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