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농단 그후]영혼팔기 강요하는 폐쇄적 계급제…복종은 의무

by박종오 기자
2017.03.21 17:18:1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가능했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폐쇄적인 공무원제도다. 민·관 사이 높은 벽과 내부 승진에 목메야하는 구조, 상급자의 권한 독점 등이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한국의 공직은 ‘폐쇄형 계급제’다. 5·7·9급 공개채용 시험에 합격한 순간 관은 평생직장이다. 밖으로 나가면 모든 걸 잃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민·관 이동의 벽이 높아서다. 한 경제부처 차관보급 관료는 “미국은 공무원 개인이 가진 정책 권한이 커서 공직에 있는 동안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으로도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은 개인의 영향력이 매우 미미해 조직을 벗어나면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조직 내부에서는 계급에 따라 직책과 대우가 달라지므로 상관 말에 순응하고 승진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다. 특히 국·실장급 고위 공무원단은 압박감이 더하다. 승진에서 밀리면 정년 이전에도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종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모든 부처 공무원이 장관을 보조하거나 보좌하게 돼 있고, 의사 결정을 하거나 입장을 내는 것도 장관만 가능하다”며 “이는 한국 공무원의 태도를 결정짓는 제도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복종의 의무(7장 57조)’를 아예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틀어쥔 인사권은 이런 상명하복 문화를 더 굳게 한다. 현재 5급 이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의 경우 장관 제청과 인사혁신처장 협의 등을 거쳐 대통령이 직접 임용한다.(국가공무원법 4장 32조) 박중훈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미국은 공무원 채용과 임용 권한이 대부분 각 부처에 있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권을 가지는 중앙집권화한 구조”라며 “대통령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개인이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적인 제도가 무조건 정답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각 제도가 가진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공무원 한 명이 장기간에 걸쳐 여러 직무를 담당하므로 시야가 상대적으로 넓고 길 수 있다. 정책의 안정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공직사회의 잦은 물갈이는 뒤집어 말하면 정책의 부침이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