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징’ 판문점, 남북평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할까

by신중섭 기자
2018.04.26 16:41:12

갈등과 대화 끊이지 않던 '판문점'
휴전회담부터 북한병사 귀순사건까지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 산실 될까

판문점(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뤄지는 판문점은 그동안 갈등과 화해가 끊이지 않은 남북 분단의 상징이다. 1951년 휴전회담에서부터 2017년 북한 병사 귀순 사건까지 분단의 긴장감이 늘 맴돌았던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60㎞, 개성에서 10㎞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 행정 주소로 경기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에 위치한다. 광복 이전에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에 속했다.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 가게’다. 1951년 10월 한국전쟁 휴전회담 장소로 이 지역이 지정되면서 한자식 표기인 판문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휴전회담을 위해 임시천막을 친 곳이 바로 ‘널문리 주막 가게’ 앞 콩밭이었다. 공식 명칭은 따로 있다. 유엔사와 북한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우리에겐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판문점을 특정 건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동서 800m, 남북 600m의 정방형의 지역 전체를 말한다.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북한으로 가는 ‘소떼’를 태운 트럭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지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1976년에 일어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남북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유엔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 남북 양측 경비병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던 판문점에는 높이 15cm, 폭 40cm의 턱이 생겼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도 많았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열린 첫 남북회담인 1971년 남북적십자 회담을 시작으로 그동안 판문점에서는 남북 사이에 수많은 대화들이 오갔다. 총 657회의 남북 당국 대화 중 절반 이상인 362회가 판문점에서 진행됐을 정도다. 1998년엔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기도 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이 분단의 갈등을 매듭짓고 평화의 새 출발을 알리는 산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