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재킷·헬멧 쓰면 40도는 우습죠"…보호장치도 없는 배달원들

by김보겸 기자
2019.07.25 18:05:25

`배달원 노조` 라이더유니온, 광화문광장서 기자회견
"건당 배달비 2500~2800원 뿐…4000원까진 올려야"
헬멧에 재킷·가죽장갑까지…체감온도는 40도 `훌쩍`
지난해 실외 노동자 1247명, 무더위에 응급실行
`폭염시 휴식 제공` 고용부 지침도 현장선 무용지물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라이더유니온’이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의 폭염, 폭우 안전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겸 황현규 기자]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날씨에 우비 입고 배달합니다. 펄펄 끓는 아스팔트로부터 전해지는 더위를 아시나요?”

올해로 맥도날드 배달원 3년 차인 박정훈(34)씨는 1년 전부터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여왔다. 폭염 속에서 우비를 입고 일하는 배달 근로자들을 위해 `1건당 100원`이라도 신경 써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맥도날드를 포함한 대다수 배달업체들은 폭염수당을 단 한 푼도 지급하고 있지 않다.

결국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오토바이 배달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광장으로 나왔다. 현재 2000원대 중후반 수준인 건당 배달료를 최소 4000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것. 이뿐 아니라 폭염과 혹한에서 일하는 야외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배달 노동자들이 설립한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당 배달료를 인상하고 폭염 시 작업 중지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이들은 체감 온도 32도·습도 90%, 불쾌지수는 `매우 높음`이 찍힌 날씨에도 근무 복장으로 나왔다. 배달원들은 더운 날에도 안쪽이 솜으로 덮힌 헬멧과 가죽 장갑, 재킷을 착용해야 한다. 배달 시간을 맞추려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서도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일이 다반사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오늘처럼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가 청바지를 벗으려고 하면 땀과 비에 젖어 옷을 벗을 수가 없다”며 “한 번은 배달하다 아스팔트 위에서 온도를 재봤더니 42도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폭염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보상으로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건당 배달료를 최소 40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라이더유니온은 배달대행업체 `배달은 형제들`과 건당 배달료 3500원을 받기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대다수 배달대행업체의 건당 배달료는 2500~2800원 수준이기 때문에 터무니 없이 적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박씨는 “더우면 물 많이 마시라는 당연한 얘기로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배달료를 인상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들은 오토바이에 휴대폰을 갖다 대기만 해도 충전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로 효율성에 관심이 많다”며 “그런데 장비는 완벽하게 구비해 놓고 사람을 보호하는 데는 이렇게 소홀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3일 라이더유니온의 한 조합원이 대구시 배달 현장에서 온도를 쟀다. 온도계에 42.3도가 찍혀 있다. (사진=라이더유니온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폭염 속 근로자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521개 응급실에 접수된 온열질환자수는 4526명. 이 중 48명이 숨졌다. 특히 야외에서 일을 하다 더위로 응급실에 실려 온 이는 1274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실내 온열질환자수(624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정부가 폭염에 대비해 노동자 보호 지침을 마련하긴 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장은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발생하면 △1시간에 15분 휴식시간 제공(폭염경보) 또는 1시간에 10분 휴식시간 제공(폭염주의보) △시원한 물 제공 △현장 그늘막 설치 등을 해야 한다. 만약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업주는 산업안전보건기준법에 따라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현장에선 관련 규제가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전문의는 “고용부 지침인 물·그늘·휴식은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 조건을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실행 가능한 것”이라며 “지금처럼 한 건당 2500~2800원 가량의 배달료를 받는 노동 조건에서는 이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가 적극적으로 업무 환경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최승현 노무사는 “배달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물론, 근로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고용부가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