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젠 근로자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고민할 때

by김형욱 기자
2018.11.05 17:32:26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중견기업 A 노동조합 집행부. 이곳엔 늘 고민만 하고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비정규직 노조 가입 문제다. 같은 근로자로서 누구나 이들과 함께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막상 추진하면 기존 노조원 개개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적 장벽에 부딪혀 원점으로 돌아간다. 노-노가 평행선을 긋는 사이 회사는 정규직 연봉의 절반 수준인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이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젊고 유능한 지원자는 늘 넘쳐난다.

현재 국내 고용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딜레마다. 정부는 수년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독려하고 있다. 기업 역시 이에 호응한다며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올 8월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 중 정규직은 1343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비정규직은 661만4000명으로 3만6000명 늘었다. 중견·대기업인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올 들어 7년 만에 비정규직 증가 속도가 정규직을 앞질렀다. 정부가 노동 안정성을 위해 들인 노력이 오히려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하는 셈이다.



노동자가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영세기업으로 갈리고 기업은 비정규직만 찾게 되는 경직된 현 노동시장은 한국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달 ‘2018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40개국 중 1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독 노동 문제에서만은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임금 결정 유연성은 63위, 고용·해고 관행은 87위, 노사협력은 124위에 그쳤다.

이젠 노동계가 큰 변화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30~40년 전 노동운동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독재종식 등 사회변화를 이끄는데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체감 청년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임시·일용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달한다. 소수 대기업 노조의 활동은 준 기득권층, 이권단체로 비치는 게 현실이다. 현대자동차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추진한 광주지역 투자를 반대하며 총파업을 준비 중인 현대차 노조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냉소적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