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금융사고 무한책임” 입증부담까지 이중고

by김나경 기자
2025.02.20 19:54:59

현실이 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금감원 “업무 중첩되면 상급자 책무” CEO 겨눠
英, 감독당국이 ‘금융사 잘못’ 입증책임
韓, 금융사가 증적 남겨 ‘잘못없다’ 입증
"책무구조도 취지는 제재 아닌 문화 정착"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법무법인 지평이 20일 서울 중구 그랜드센트럴에서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른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혁신’을 주제로 경영포럼을 개최했다. 김미정 법무법인 지평 금융규제그룹 파트너변호사가 책무구조도 도입시 고려사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올해 은행·금융지주 책무구조도 시행으로 최고경영자(CEO)가 내부통제 관리에 ‘무한책임’을 지게 됐다. 이와 함께 CEO는 금융당국의 제재심의 절차에서 내부통제를 잘 지켰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해 부담만 커졌다는 지적이다. ‘책무구조도의 선진사례’로 평가받는 영국에서는 금융당국이 CEO의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을 입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CEO가 증적을 남겨야 할 상황이다.

법무법인 지평 경영컨설팅센터가 20일 서울 중구 그랜드센트럴에서 주최한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른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혁신’ 포럼에서 김미정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는 “경영진이 상당한 주의를 다해 관리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했는지 여부, 위법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관리조치를 사전에 이행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며 “위법행위 발생 시 금융당국이 경영진에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가 늘 것이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76개 금융관계법령상 준수사항과 과거 금융사고, 제재사례 등을 분석해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감원은 은행·금융지주 사전 컨설팅에서 ‘상급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날 지평이 제시한 자료에서 따르면 금감원은 책무구조도 컨설팅에서 “상·하위 임원의 업무가 일치하면 전결권과 상관없이 상위 임원에게 책무를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각 은행·지주가 대형 법무법인, 컨설팅업체에 거금을 들여가면서 책무구조도 컨설팅을 받았는데 결국 무용지물이었다”며 “‘애매하면 CEO 책무’라는 것이 사전 컨설팅 결과였다”고 말했다.

오태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에서 “영업 일선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담당직원 또는 부서가 아니면 사전감지가 어렵고 업무절차나 시스템상 위험관리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임원의 책무 분배 상 어려움이 있다”고 짚었다.



애초 준법감시인의 내부통제 관리 의무까지 CEO로 넘어가면서 점검 사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제 준법감시인이 아니라 CEO가 내부통제, 준법감시 총괄의무를 지게 됐다”며 “현실적으로 임원이 모든 것을 다 점검하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했다.

금융당국이 제도를 도입할 때 벤치마킹한 영국 사례와 비교해 ‘내부통제 강화’라는 본 취지가 퇴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영국금융감독청(FCA)은 임원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위반했다는 입증 책임을 직접 진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시 누가 입증 책임을 지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사실상 금융사와 CEO가 내부통제 총괄관리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 입증 책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금융사가 입증 책임까지 질 경우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내부통제 문화 확립이라는 취지에도 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현정 스탠다드차타드증권 준법감시인은 “영국은 FCA가 내부통제 위반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며 “제재 절차로 들어가면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다했다는 ‘증적’이 있는지가 가장 큰 다툼의 영역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제재보다는 내부통제 문화 안착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재심의 절차에서 증적이 중요한 만큼 내부통제 실질보다는 이메일 기록 남기기 등 형식을 더 중요시할 가능성도 있다. 입증책임을 CEO가 지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다.

오태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감독 당국이 ‘상당한 주의 의무’에 대한 모호성을 해소하고 소형기관에 대해서는 내부통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책무구조도 각론에서 치열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