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족 중장기 대책 마련 시급”…車반도체 국산화 한목소리

by신중섭 기자
2021.02.08 16:46:29

차량·스마트폰 반도체 부족으로 '몸살'
유럽, 아시아 벗어나려는 '자립화' 움직임도
"車반도체 등 국산화 나서야…전기차 확대도 대비"
"저마진 시장 투자 어려워…車업계와 머리 맞대야"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대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폰 등으로 반도체 부족 현상이 번지고 있다.

유럽은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아시아에 반도체 부품 공급을 기대지 않고 자립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요인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데다 향후 자율주행·전기자동차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반도체 부품의 국산화율 제고와 생태계 조성 등 중장기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한국GM 부평공장 (사진=뉴시스)
8일 전자와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폭스바겐, 아우디, 포드, 도요타 등 세계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생산 감축이나 중단에 들어갔다. 한국GM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말리부 등을 만드는 부평2공장의 생산량을 절반 가량 줄이기로 했다. 현대·기아차 등 다른 국내 완성차 업계는 미리 수개월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당장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갑작스레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자동차공장들이 감산에 들어간 틈에 반도체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전자 제품용 반도체 생산 비중을 늘렸다. 하지만 완성차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차량용 반도체도 급하게 필요한 상황이 됐다. 현대차그룹 글로벌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작년보다 8.9% 늘어난 791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 부족 사태를 겪는 건 차량용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가전·TV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TV·스마트폰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노트북·태블릿·TV 와 스마트폰의 공용부품인 PMIC(전력관리IC)와 DDI(디스플레이드라이버IC) 등을 위주로 부품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애플과 LG전자(066570)는 최근 4분기 실적발표에서 스마트폰용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제품 생산에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부족이 심화하는 흐름 속에서 반도체 공급망이 대만·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보니 미국·유럽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린 미국과 대만 정부 간 고위급 경제회담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재구축해 현재와 같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반도체 공급망에 대해 자립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 장관은 지난 6일(현지 시간) 최대 500억 유로(약 67조 2700억원) 규모를 목표로 한 유럽연합(EU) 내 반도체 제조 기술 발전 프로젝트에 10억유로(약 1조3500억원)를 즉각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EU가 공동으로 추진해왔으나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한 만큼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인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요인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향후 자율주행·전기차 시장 확대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중장기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내연기관 차량에 쓰이는 반도체는 2~300개 수준이지만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에는 10배 수준인 최대 2000개의 반도체가 사용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NXP △인피니언 △르네사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ST마이크로일레트로닉스 등 5개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랑용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없다시피 한 상태다. 문제는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 현재의 차량용 반도체는 높은 수준의 설계가 요구되면서도 생산은 구식 재료인 8인치(200mm) 웨이퍼(반도체 원판)에서 이뤄져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파운드리업체들이 생산 공장을 증설하기보다는 인수합병(M&A)을 선택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005930)의 NXP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업체 M&A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안기현 한국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번 사태는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당장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피해가 없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경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율주행·전기차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시장도 기술과 제조 모든 부문에서 투자에 나서 차량용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완성차와 반도체업체들이 머리를 맞대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임규태 조지아공대 전자설계연구소 박사는 “현재 필요한 반도체와 미래에 필요한 반도체는 완전히 다르다”며 “반도체 업계가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자동차 업계도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자동차 업계 입장에선 내연 기관 중심으로 이뤄진 생태계를 쉽게 바꾸기 힘들고 반도체 업계도 저마진인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먼저 뛰어들기 힘들다는 것”이라며 “양 업계가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