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연쇄 살인은 왜 현실이 되었나…대학로 스테디셀러 '더 픽션'

by김현식 기자
2025.02.28 19:00:00

작가·기자·형사 캐릭터 등장 3인극 뮤지컬
회전 무대 활용 짜임새 있는 이야기 전개
3월 9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서 공연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범죄자들을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 ‘블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해 인기를 끌던 작가가 어느 날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실에서 소설 속 ‘블랙’의 범행을 재현한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뮤지컬 ‘더 픽션’의 한 장면(사진=HJ컬쳐)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더 픽션’은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의 작가 그레이 헌트, 그의 작품이 신문에 계속 연재되도록 힘을 쏟는 편집 담당 기자 와이트 히스만, 석연치 않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 하는 형사 휴 데커의 이야기를 그리는 3인극 뮤지컬이다. 극 초반부 그레이 헌트의 죽음을 알린 뒤 휴 데커의 취조를 받는 와이트 히스만의 기억을 되짚어 옛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으로 현실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사연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뮤지컬 ‘더 픽션’의 한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더 픽션’의 한 장면(사진=HJ컬쳐)
쇼적인 퍼포먼스 대신 드라마에 힘을 준 연극적 특성이 강한 뮤지컬이다. 세밀한 대사로 복잡한 플롯의 이해를 돕는다. 회전 무대 장치는 무대 연출의 핵심 포인트.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바쁘게 넘나드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구겨진 소설 원고가 무대 위에 하나둘씩 쌓여가며 극의 긴장감이 점차 고조된다. 총 16곡인 넘버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 과정에 맞춰 다채롭게 구성했다. 강렬한 록 넘버와 듀엣곡의 비중이 높은 넘버들을 통해 갈등 구조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다가 극 후반부 그레이 헌트와 와이트 히스만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애틋한 장면들로 울림을 준다. 공연제작사 HJ컬쳐 한승원 프로듀서는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설 같은 삶 속에서 나의 아픔을 나보다 더 아파해주며 손을 잡아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더 픽션’의 한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더 픽션’의 한 장면(사진=HJ컬쳐)
2018년 KT&G 상상마당 창작극 지원 사업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 선정작으로 초연한 작품이다. 이후 2019년, 2021년, 2023년 시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면서 누적 공연 400회, 누적 관객 6만 5000명을 돌파한 스테디셀러로 거듭났다. 2020년에는 라이선스 판매를 통해 중국에서도 공연을 올렸다.

5연에 해당하는 이번 시즌은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했다. 신구 조화를 이룬 캐스트로 열성 관객의 ‘N차 관람’ 욕구를 자극하며 순한 중이다. 출연진에 이름을 올린 배우는 김도빈·정동화·손유동·김준영(그레이 헌트 역), 최호승·황민수·정재환·박준형(와이트 히스만 역), 문경초·김준식·정이운(휴 대커 역) 등이다.

어느덧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더 픽션’은 객석 점유율 80%대를 유지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개막 후 두 달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대학로 뮤지컬 부문 티켓 예맥액 순위에서 10위권 내에 머물러 있다. 공연은 3월 9일까지.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9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