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이끌라" 했는데…조원태 승계 '난항'
by이소현 기자
2019.05.08 20:39:53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한진그룹이 차기 동일인(총수) 지정을 놓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이후 지분 상속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상속의 향배가 한진그룹의 총수 지정의 변수로 떠올랐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취임 3주차를 맞았지만, 동일인 지정이 미뤄지면서 앞으로 그룹 경영권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건은 작고한 조양호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이 조원태·현아·현민 3남매 중에 누구에게 얼마만큼 가느냐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구조를 보면 조 전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회장(2.34%)과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현민 전 전무(2.30%)가 각각 2%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민법 제 1009조에 따르면 보유했던 주식에 대한 배우자 및 직계비속의 법정상속분은 별도 유언에 따른 증여가 없으면 조 전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자녀인 조원태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4명이 각각 ‘1.5대 1대 1대 1’의 비율로 나눠 받게 된다. 민법에는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순위가 똑같이 1순위지만,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50% 가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 전 회장 보유 주식을 어떻게 누구에게 상속할지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은 없다. 만약 조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법정 비율대로 상속하면 이 전 이사장은 5.94%, 조 회장 등 자녀 3명은 3.96%씩 나눠 받게 된다.
현재 한진가 3남매가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주식 비율이 2%대로 미미한 데다 상속분도 3%대로 똑같이 받게 돼 남매간의 지분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 전 회장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두 자매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조 회장의 경영권 확보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분을 14.98%까지 늘리며 경영권 견제에 나서고 있어 경영권 방어에 한진그룹이 필사적으로 뭉쳐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분정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상속세는 사망일로부터 6개월 이후부터는 가산세가 추가로 부과된다. 따라서 한진그룹은 오는 10월 이전에 상속 문제를 마무리 지을 것으로 예상한다.
재계는 조 회장이 지난달 24일 전격적으로 그룹 회장직에 오르고 동일인 지정까지 무난하게 이뤄질 것으로 관측했지만, 공개된 실상은 달랐다.
동일인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이다. 공정위가 그룹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과 보유 지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다. 동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친족과 그 기업 집단에 속하는 계열사 범위 등이 정해지기 때문에 대기업 그룹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1일께 대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과 동일인을 발표하는데, 이날 한진그룹에서 관련 자료 제출이 늦어져 오는 15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1987년부터 대기업집단 정책을 시행하면서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이 몇 차례 연기된 적은 있지만, 자료제출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한진그룹이 처음이다.
한진그룹이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명의로 공정위에 제출한 공문에 따르면 “기존 동일인의 작고 후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하고 있다”라고 적시했다. 한진그룹이 총수 지정을 놓고 내부 갈등이 있었던 점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다만 공정위 발표 직후 한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제출할 서류 준비가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 자료 제출을 안 한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한진그룹은 대기업 동일인 지정은 법제상으로 15일까지라서 기한 내 제출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진그룹에서 총수 지정을 놓고 내부 이견이 발생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딸들인 조현아·현민 자매가 반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그동안 업계에선 형제간 갈등을 겪었던 2세대와 달리 3세대 한진 오너가는 경영권 분쟁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회장은 아버지인 조 전 회장이 유언으로 “가족과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조 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사내이사로 유일하게 등재돼 있었고, 조현아·현민 한진그룹 자매들은 이른바 ‘땅콩회항’과 ‘물컵갑질’ 등 사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어 조 회장으로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비쳐졌다.
재계관계자는 “한진그룹은 내부적으로 2000억원대로 추산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하고, 외부적으로 KCGI와 경영권을 놓고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다”며 “안팎으로 분열된 모습이 비춰지면 한진가가 그룹 경영권을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