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품격 잃은 나경원 원내대표 연설

by김미영 기자
2019.03.12 19:44:01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헌정 농단 경제정책”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 “먹튀·욜로·막장 정권” “기업 자유 뺏는 강탈, 착취 정권” “빅브라더 이은 문브라더” “중국 동북공정, 일본 독도왜곡만큼 위험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공정”

원고지 100여쪽에 달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비난으로 채워졌다. 4선 국회의원인 그가 석달여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처음으로 교섭단체 대표로 내놓은 대국민 연설이기에 더 실망스럽게 다가온다.

분야별 힐난만 백화점식으로 이어가면서, 어떻게하면 더 ‘자극적’으로 이름지어 깎아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느낌이다. 양식과 소신있는 정치인에 기대하는 ‘품격의 언어’는 없었고, 무릎 치게 하는 통찰력도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 9월 같은 당의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가 소득주도성장과 기업 ‘때려잡기’, 북핵 문제와 탈원전 등으로 정부를 비판한 연설과 내용도 대동소이해, 단지 비난의 표현만 바꿔치기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빗댄 발언은 정쟁 유발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됐단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당 밖에서 높다. 당 공보실을 통해 “미국 통신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단정지어 말한 게 아니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라 부연했지만, 이러한 해명이 외려 궁색하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20석 이상 당의 원내대표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롯이 40여분간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서서 정치인으로서 벼려온 이상과 신념을 국민들을 상대로 풀어놓을 수 있는 영예이기도 하다. ‘잠룡’으로 분류돼온 나 원내대표가 그 시간을 정권을 향한 비난과 증오의 언어로 채웠다는 건 나 원내대표에게 마이너스다. 같은 야당이지만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9월 가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하면서도 건설적 대안을 제시해 호평을 받았다. 연설문의 단어 하나 하나에 절제와 호소, 품격이 있었다.

나 원내대표가 첫번째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끝내자 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지지층도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성공한 연설이라고 봤을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전당대회 연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