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저점? 묻지 마라"…의미 없어진 증시전망
by최정희 기자
2020.03.12 19:18:18
코스피, 이번 주에만 10% 넘게 폭락..8년 5개월만에 `사이드카`
두 달 만에 약세장 진입.."역대급 단기 폭락"
"모르는 악재 또 있나..강도 커지는 패닉셀링"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코스피 지수 저점이요? 그런 것은 묻지 마세요. 의미가 없어요.”
공포에 질려 너도 나도 주식을 던지는 투매양상이 나타났던 12일,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아예 코스피 예상범위 제시를 거부했다. 예측이 무의미한 장세라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스피 지수 2000선 이하에선 ‘매수’를 권했던 이들도 말을 바꿨다.
이날 국내 증시는 시퍼렇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코스피 지수는 장중 99.71포인트, 5.23%까지 하락, 1808.56선까지 내려갔다. 2011년 10월 5일, 그리스 등 유럽 재정위기에 6.31% 떨어진 이후 8년 5개월만에 가장 큰 폭락이다.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매도호가 효력 정지)가 발동한 것도 이 때 이후로 처음이다. 코스피 지수는 이번 주에만 10.09% 폭락, 이미 연 고점(2277.23, 1월 20일)에서 20.6% 넘게 급락했다. 이론적으로 약세장에 접어들었다. 코스닥 지수도 570선을 내주면서 이번 주 들어 12.33% 미끄러졌다. 이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 합쳐 시가총액 167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된 공포가 국제유가 급락에 미국 에너지 업체의 하이일드 채권 폭락(금리 급등), 레버리지론을 기초자산으로 묶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크레딧 붕괴 가능성으로 번졌다. ‘증시 부양’에 열을 올리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별 뾰족한 수를 못 내놨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악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등 알 수 없는 공포가 시장을 뒤엎고 있다. 이른바, 언노운(unknown·알 수 없는)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코스피 저점을 쉽게 예견할 수 없다면서도 종전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DB금융투자가 코스피 하단을 1830선으로 제시한 것이 가장 낮았으나 최근 1700선까지 내려갔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지수를1960~2370선에서 1800~2000선으로 내렸다. 코스피 상장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7% 증가하고 코로나 사태가 신용위험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다. 신용위험으로 확산된다면 1700선까지도 뚫려 있다는 전망이다. 교보증권도 2000~2400선이던 코스피 밴드를 1750~2200선으로 수정했다. 올해 수출이 5% 증가할 것이란 추정에서 8% 감소로 바꿨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가 공장 가동 중단 등 공급 차질 이슈에서 글로벌 팬데믹(세계적인 유행·pandemic), 경기 침체 문제로 확대되더니 이제는 부채 문제, 금융위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며 “이 정도면 더 이상 나올 악재가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가 53.9까지 올라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고, 시스템 리스크 여부를 측정하는 씨티 매크로 리스크 지수(Citi Macro Risk Index)는 최고 레벨인 1까지 상승, 2015년 신흥국 금융위기 이후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만 등에서도 대규모 매도세를 보이는 것은 알 수 없는 리스크에 가장 위험한 자산을 팔자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만 지난 달 이후 9조원의 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최석원 SK증권 센터장도 “저금리 하에서 레버리지가 많이 늘어났는데 금융위기 때처럼 시스템 리스크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그동안 경제가 취약했던 남유럽, 터기 등 국가별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고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크레딧 이슈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화정책 회의론도 번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에 이어 영란은행도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고 유럽, 호주, 일본 등도 돈 풀기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증시 폭락을 막는데에는 역부족이다. 연준이 의회 문턱을 넘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통화 정책은 물론 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인데 돈 넣었다고 공장이 돌아가겠냐며 재정정책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나온 통화·재정정책이 안 먹히면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론 코로나19 확산이 뒤늦게 시작된 미국은 4월 초에야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시장이 얼마나 버틸 것인가가 관건이다. 최석원 센터장은 “개인 순매수액과 신용잔고를 고려하면 손절매가 나올 수 있어 패닉셀링(공포성 매도·Panic selling)이 더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만 지난달에 이어 이날까지 무려 10조4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신용잔고는 9조9600억원(11일)으로 연초 이후 8800억원 늘어났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신용융자 잔고 비중은 각각 0.34%, 2.55%로 최근 3년 평균치(2.06% 0.31%)를 웃돌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신용위험 경계감이 커진 만큼 은행업종을 예의주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에 대한 익스포져가 자칫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며 “미국 은행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가 깨진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0년 이후 미국 은행주가 PBR 1배를 하회한 것은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2016년 유가 급락기였다. 그는 이어 “부도위험을 반영하는 은행주들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이 최근 1%포인트 대로 상승했다”며 “위기 수준은 아니나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가 폭락을 투자 자산의 내구성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학균 센터장은 “거품을 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부도 가능성이 있는 회사들은 포지션을 줄이는 등 갖고 있는 자산의 내구성을 점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