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팡' 하려면 손해 감수…"환불해달라" 쿠팡 "안 됩니다"

by한전진 기자
2025.12.04 17:04:38

와우멤버십, 혜택 한 번 이용하면 중도환불 불가
개인정보 유출돼도 환불 불가…"왜 소비자가 손해"
해지도 6단계 '다크패턴'
전문가 "기업 과실 땐 환불 기준 유연하게 적용해야"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쿠팡 유료 멤버십 해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쿠팡발(發) 3370만건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탈팡(탈쿠팡)’ 움직임이 확산하면서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불안한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떠나려 해도, 이미 혜택을 이용했다면 환불받을 수 없는 구조여서다. 결국 피해자가 금전적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리에 주차돼 있는 쿠팡 배달 차량. (사진=연합뉴스)
4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와우멤버십(월 7890원) 공식 환불 정책은 ‘당월 혜택 이용 여부’를 기준으로 나뉜다. 해지 신청 시점까지 혜택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면 당월 회비가 환불되지만, 로켓배송·쿠팡플레이 등 혜택을 한 번이라도 이용했을 경우 해당 월 회비는 돌려받을 수 없다. 월초에 로켓배송 한 번만 이용했더라도 남은 기간에 대한 환불은 불가능한 셈이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해지를 시도했다가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쿠팡 측은 이 같은 정책이 멤버십 악용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혜택만 집중적으로 이용한 뒤 해지와 재가입을 반복하는 이른바 ‘체리피킹’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업계 전반에서도 유사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이커머스, 음원 플랫폼 등 주요 업체들도 중도해지 시 일할계산 환불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만 이번 쿠팡 사태는 회사의 귀책에서 비롯된 만큼 성격이 다르다는 목소리가 많다.

여기에 해지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비판도 크다. 쿠팡 계정을 탈퇴하려면 모바일 앱이 아닌 PC 버전에서 본인 확인, 이용 내역 점검, 설문조사 등 6단계를 거쳐야 한다. 와우멤버십 가입자는 멤버십 해지 절차까지 추가로 거쳐야 해 더욱 번거롭다. 가입은 간편하게, 해지는 어렵게 설계하는 이른바 ‘다크패턴’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환불도 어렵고 해지 절차도 복잡하다 보니 소비자 불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같은 환불 정책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에 나선 바 있다. 공정위는 작년 5월 쿠팡 등 업체에 대해 현장 조사를 진행한 뒤, 작년 말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공정위는 쿠팡에 대해 ‘다크패턴(가격인상 동의 눈속임)’ 혐의만 제재하고, 중도해지 환불 정책에 대해서는 위법성 판단을 유보했다. 법적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소비자 귀책이 아닌 쿠팡 내부 보안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크다. 평시라면 악용 방지 차원의 환불 제한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기업 과실로 인해 소비자가 서비스 이탈을 결심한 상황에서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하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악용 우려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재가입 제한’ 등 보완책을 마련하면 환불 정책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에 귀책 사유가 있어서 해지를 요청하는 건데, 혜택을 일부 이용했다는 이유로 환불을 거부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유출 자체도 문제지만, 그 이후 고객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가입 제한 같은 안전장치를 두면 악용 우려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이 쿠팡에 있는 만큼, 환불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게 시장 1위 기업다운 처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