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中과 미세먼지 책임공방보단 건설적 협력 모색하겠다"

by박일경 기자
2019.03.26 18:53:36

미세먼지 汎국가기구 위원장 수락 후 첫 행보
28~29일 보아오포럼 참석…리커창 中총리 면담
오랜 국제경험 바탕 다자간 외교해법 제시예상
“외교장관·유엔 사무총장 때보다 각오 비장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오는 28일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미세먼지에 관한 한·중 간 협력 강화를 위해 양국 협의를 측면 지원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청정대기 파트너십(NEACAP)이 실제 체결돼 있는데다 한·중·일 장관회담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시진핑 주석과 두 번의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고 환경장관 회담까지 있었던 만큼 논의의 틀은 잘 잡혀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중간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기문(75) 전 유엔 사무총장은 2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토론회를 통해 “중국 등 동남아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과 공동 대응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 기후 관련 국제협약 경험과 국제 지도자들과 쌓은 교분을 최대한 활용해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오는 28~29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보아오포럼이 개최된다. 반 전 총장은 보아오포럼 이사장 자격으로 연례회의 참석차 27일부터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반 전 총장은 “여기에서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한중간의 책임 공방이 아니라 이웃나라 간의 건설적인 협력방안에 대해 정부의 일을 돕고 저의 역할을 모색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汎)국가기구’(이하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을 맡은 이후 첫번째 행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배경을 비롯해 북핵 문제, 남북 관계, 정부 외교정책 등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현재 환경부는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설립을 위해 추진단을 꾸려 발족 준비를 하고 있다. 범국가기구 설립추진단은 2명의 공동단장을 중심으로 청와대 사회수석과 기후환경비서관, 국무조정실의 미세먼지개선기획단장, 환경부 차관·대기환경정책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반 전 총장은 “각계각층 인사 및 미세먼지 전문가들을 만나 상식적인 사회합의를 도출하는 게 제 역할”이라며 “실무추진단을 독려해 조속한 시일 내에 범국가기구가 출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의 위원회가 범정부적 조직이었던 점과 달리 이번 미세먼지 범국가기구는 범국가적인 기구로 명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초당파적으로 과학적이면서 시민사회까지 아우르는 모든 이들의 의견을 망라해 대통령께 건의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의 민·관 합동 심의기구인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지난달 15일부터 본격 가동한 상태다.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기획재정부 등 17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미세먼지 대책의 추진실적을 점검·평가하고 관련 정책의 조정과 지원 기능을 책임진다.



반 전 총장은 “자문 기구여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문 대통령 면담 때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단순한 자문 역할을 넘어 적극적인 정책기구 기능을 담당하겠다는 각오로 읽혀진다. 앞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설치 제안을 문 대통령이 수용함에 따라 반 전 총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면담한 뒤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정부 유관부처는 미세먼지 줄이기를 부처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부처의 여타 정책적 과제를 여기에 맞추는 등 특단의 각오로 미세먼지와의 전쟁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특별 기구 하나 만들어 놓고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보아오포럼에서 리커창 총리와 회담이 예정돼 있어 반 전 총장과 이 총리 간 ‘미세먼지 컨트롤타워’ 업무 분장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배경을 비롯해 북핵 문제, 남북 관계, 정부 외교정책 등에 관한 솔직한 생각들을 밝혔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문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7년 6월에 이어 유엔 총회와 청와대 면담까지 세 번째 만남 만에 범국가기구 위원장이란 중책을 제안 받은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 때나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보다 비장한 각오를 느낀다”며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 속으로 들어가 엄숙하고 비장하다”고 부담스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정치권은 미세먼지 문제를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접근해서는 안 되는데 정쟁으로 번지는 순간 범국가기구는 실패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또 산업계와 사회의 다양한 이익집단의 역할도 중요하다. 산업계나 이익집단이 모두 한 발작씩 물러나야 국민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반 총장의 진단이다.

그는 “미세먼지 위원장을 맡기는 했지만 얼마나 많은 비판이 앞으로 들어올 것인지 무섭다”며 “망설임이 없지 않았고 수락했을 때 많은 분들이 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해야 한다, 기후변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 해결에 기여해달라는 요청에 어떤 이유로든 회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춘추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범국가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미세먼지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민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세먼지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