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나왔지만…“현장의견 반영 어려워..보완책 지속 나올 것”

by박철근 기자
2018.06.11 19:15:34

유연노동시간제도 가이드라인도 노동시간단축 시행 직전 발표 예정
회식은 원천적으로 노동시간 ‘불인정’…거래처 합류시 해석 달라질 수 있어
고용부 “구체적 사안, 지방노동관서·콜센터에 문의해달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세종= 이데일리 박철근 김소연 기자] 고용노동부가 11일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노동시간 해당여부 판단기준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제도 시행(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을 불과 20일 앞두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에서는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는 정부의 발표만 있을 뿐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커진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현장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보완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김왕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기자설명회에서 “어떤 나라도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해서는 법률이나 정부 지침으로 정하지 않고 각 사례별로 판단한다”며 “정부가 일률적인 지침을 발표하는 것이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의 행정해석이나 판례를 참고해 조금 더 일반화해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각 사업장별 구체적인 궁금증은 각 지방노동관서와 콜센터에 문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고용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해당여부 판단기준에 따르면 직장 내 회식은 상사가 참석을 강제하더라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 정책관은 “통상 직장 내 회식은 노무의 제공과는 관련없는 사기진작, 친목도모 등의 성격이 강하다”며 “상사가 참석을 강요했더라도 근로계약상 노무제공의 일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장 내 회식 도중에 거래처 직원이 합류해 회식과 접대의 중간으로 자리의 성격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김 정책관도 “거래처 직원이 합류하게 되는 등의 변수가 생기면 그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식 후 재해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의 충돌도 예상된다.

현행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르면 회식 후 귀가도중 사고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에는 노무제공여부가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한 기준이 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병희(34·남)씨는 “회식과 관련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회식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회식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는 젊은 직원들은 더더욱 직장 회식이 괴로운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 관련 가이드라인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보완책이 지속해서 발표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보완하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시행했다”며 “(일자리안정자금도)지난해 현장 상황에 대한 조사 없이 시행하다보니 보완대책이 줄줄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정책방향은 분명하게 제시하면서도 시간을 가지고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문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현장의 의견을 다 반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현장은 다양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짧은 시간에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완책을 지속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임시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다”면서도 “노동시간 관련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 현장의 혼란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니까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 같다”며 “이는 사실 악수(惡手)라고 본다.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경제규모는 성장하는 데 마치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부문은 바로 탄력근무제, 재량근무제 등을 포함한 유연근무제도에 관한 활용방안이다. 유연근무제도는 생산직과 ICT(정보통신기술)업종에서 특히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날 발표에서는 유연근무제도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김 정책관은 “유연근무제 활용 매뉴얼은 6월 마지막주에 공개할 예정”이라며 “유연근무제를 둘러싼 법적 쟁점들이 첨예하게 대립해 근로감독관과 변호사, 법학자 등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7월 1일부터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데 시행 직전에서야 매뉴얼을 배포하는 것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도 이날 오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긴급 기관장회의’에서 “7월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하는 기업에 대한 실태조사가 74% 밖에 이뤄지지 않았다”며 “금주 내로 현장 실태조사를 마무리하고 준비가 안된 기업은 컨설팅을 병행해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