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피크아웃’ 대비하는 빅3…생존 키워드는 ‘디지털 전환’
by김은경 기자
2025.12.02 17:25:03
‘피크아웃·인력난·중대재해·中 공세’ 해법
AI 도입·디지털 전환으로 생산능력 극대화
HD현대·한화, 2030년 ‘스마트 야드’ 구축
삼성, AI 설계 플랫폼 ‘S-EDP’ 전사 도입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글로벌 조선업이 내년을 기점으로 ‘피크아웃’(고점 통과)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이 인공지능(AI)·로봇·디지털 트윈을 앞세운 ‘스마트 조선소’ 전환에 일제히 속도를 내고 있다. 수주 호황이 꺾이기 전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려 다가올 불황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조선 경쟁력은 향후 중국과의 경쟁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가를 핵심 변수로도 떠오르고 있다.
| |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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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267250)는 ‘미래 첨단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조선소 디지털 전환을 전면화하고 있다. FOS는 데이터·가상현실(VR)·증강현실(AR)·AI 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조선소 모델이다. HD한국조선해양(009540)은 글로벌 빅테크 팰런티어와 손잡고 2030년까지 설계부터 인도까지 모든 공정에 시뮬레이션 검증을 도입해 생산성을 30% 높이고 건조 기간은 30% 단축한다는 목표다.
실제 작업 현장에는 로봇 도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와 HD한국조선해양은 로봇 전문기업 페르소나 AI, 로봇 엔지니어링 기업 바질컴퍼니와 AI 기반 용접 자동화 기술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동 개발 중이다. 고난도 선체 용접 작업을 대신 수행해 작업자 사고 위험을 줄이고 야간·악천후에도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내년 시제품 완성, 2027년 현장 실증이 예정돼 있다.
한화오션은 거제조선소를 중심으로 스마트 야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2026년 약 1600억원을 투입해 스마트 조선소 시스템을 구축하고 2030년까지 총 3000억원 규모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활용해 야드 내 자재·장비 위치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용접·가공 로봇을 도입해 생산 자동화율 70% 달성을 목표로 한다.
안전 분야의 디지털화도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042660)은 내년까지 스마트 안전 시스템 구축에만 640억원을 투입한다. AI 기반 화재·폭발 위험 자동 감지, 중장비 충돌 방지, 선박 내부 밀폐 공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작업자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위험 구역 접근 시 경보를 울리는 ‘디지털 안전망’도 조성한다.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소의 스마트 야드 경쟁력을 해외로 이식한다. 미국 필리조선소에 자동화 설비와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북미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노후 설비와 숙련 인력 부족이 한계로 지적되는 미국 조선업에서 한국형 스마트 야드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란 평가다.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 10월 조선·해양플랜트 분야 최초의 자동 설계 플랫폼 ‘S-EDP’를 공개했다. 선체 구조·배관·전장 설계 등 반복 업무를 AI가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해 2030년까지 설계 자동화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설계·자재 발주·생산·시운전에 이르는 전 과정을 S-EDP 기반 데이터로 연결해 완전한 스마트 야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조선업계가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피크아웃 우려가 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한 2021년 이후 일감이 누적되며 견조한 실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 2~3년 내 이익 감소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력 구조 문제도 심각하다. 국내 조선소는 숙련 인력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유입 부진으로 만성적인 인력난이 이어지고 있다. 호황기마다 외국인 인력을 긴급 수혈하는 구조도 반복되고 있다. 스마트 조선소 전환은 인력난 해소와 동시에 산업재해 위험을 줄이는 구조적 해법으로 평가된다.
중국 조선소의 저가 공세 역시 디지털 전환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중국은 저가 선박 위주로 수주 물량을 늘리며 생산 규모에서 한국을 앞섰다.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 선종에 강점을 가진 만큼 공기 단축, 품질 균일성 등 기술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소의 생산 효율과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리기 위해선 AI 도입과 디지털 전환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