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테라팹’ 승부수, 삼성 파운드리 흑자 전환 ‘키’ 쥔다

by송재민 기자
2026.02.03 16:12:33

고객에서 경쟁자로…빅테크 반도체 자립 움직임
머스크, 설계·생산 통합한 테라팹 구상 공식화
“협력 불가피하지만 결국 분리”…중장기 시험대

[이데일리 송재민 기자] “공장을 짓지 않으면 우리는 ‘칩 벽(chip wall)’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실적 발표에서 선언한 ‘테라팹(TeraFab)’ 구상이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칩 설계부터 생산, 패키징을 수직 계열화하겠다는 이 승부수는 삼성전자(005930) 파운드리사업부에 약 23조 원 규모의 ‘수주 잭팟’을 안겼지만, 동시에 ‘잠재적 경쟁자’의 탄생이라는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 (사진=삼성전자)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의 하반기 완전 가동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시험 가동에 들어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테슬라로부터 수주한 23조원 규모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행보다.

테슬라의 대규모 물량 확보는 그동안 적자가 이어졌던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체질 개선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테일러 공장이 안정적으로 가동될 경우 삼성 파운드리가 이르면 올해 연간 기준 흑자 전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형 고객 기반을 확보한 데다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대라는 전략적 의미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다만 머스크가 제시한 ‘실리콘 독립’ 구상은 중장기적으로 삼성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향후 자율주행(FSD)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에 들어갈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고 자체 생산 역량 확보를 검토 중이다. 머스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공급사들이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동해도 우리가 필요한 물량을 대기엔 역부족”이라며, 로직 칩과 메모리, 패키징 공정을 한 지붕 아래 통합한 거대 공장 테라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구상에 힘을 더하는 건 ‘테슬라의 인텔 파운드리(IFS) 자산 인수 및 협력설’이다. 머스크는 최근 “인텔과 무언가를 함께 할 가능성이 있고,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고 언급하며 파트너십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외신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인텔이 파운드리 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할 경우, 테슬라가 이를 흡수해 단기간에 미세 공정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테슬라가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통해 내재화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 역시 테슬라의 독자 행보가 가져올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상식적으로 테슬라가 삼성전자나 TSMC의 기술력을 단기간 내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테슬라가 인텔의 파운드리 자산 인수 등을 통해 생산 기술을 빠르게 확보할 경우를 가정하면 내재화 시나리오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스토리”라고 진단했다.

테슬라가 실제 팹 가동에 성공하게 되면 삼성전자는 최대 고객을 잃는 동시에 강력한 경쟁자와 마주하게 된다. 테슬라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로봇 등 광범위한 수요처를 가지고 있어, 자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삼성과의 의존 관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김 연구위원은 “테슬라가 공장을 지어도 100% 그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삼성과의 관계는 계속 갈 수밖에 없겠지만, (자체 생산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결국 관계가 분리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