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클럽딜이 만든 ‘포트폴리오 복제 시대'…민간 LP 이탈 가속
by송재민 기자
2025.12.01 18:11:03
클럽딜 고착에 차별성 실종
작년 대비 민간 자금 25% 급감
시장 다양성 약화 우려 커져
“출자자는 빠지고 소수딜로 쏠려”
[이데일리 마켓in 송재민 기자]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딜 쏠림’과 ‘포트폴리오 동질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출자자(LP)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다양한 민간 LP들 사이에서 “VC 펀드에 돈을 넣어도 결국 포트폴리오는 다 똑같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 같은 불만은 민간 출자 자체의 위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민간 LP들이 가장 크게 제기하는 문제는 클럽딜(공동 투자) 관행이 심화되면서, 펀드별 차별성·전략성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리즈A~C 단계에서 동일 기업이 여러 VC 포트에 반복해서 등장한다”며 “분산투자를 위한 멀티펀드 출자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간 경쟁 구도와 VC 간 판단 기준이 동질화되면서, 리스크 관리 기능마저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통계에서도 감지된다. 2024년 국내 벤처투자 펀드 결성액은 10조60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민간 LP 출자액은 1년 새 25% 이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된다.
어느 VC에 넣어도 결국 같은 기업에 투자된다는 인식 때문에 민간 LP들이 신규 펀드 출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는 여러 VC에 나눠 출자하면 서로 다른 섹터와 전략을 조합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형 딜 위주로 클럽딜이 고착돼 포트폴리오 구성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 벤처생태계 특유의 공공·정책성 LP 중심 구조도 동질화 문제를 키우는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VC 상당수가 모태펀드·성장금융에 의존해 펀드를 조성하다 보니, 투자심사 패턴이 비슷해지고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이 ‘정책 테마’ 중심으로 수렴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소수의 VC들이 패밀리오피스·창업자 자산 등 전부 민간 자금으로만 구성된 펀드를 내세우며 ‘대안 모델’로 주목받기도 한다. 민간 LP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VC에 대해 “포트폴리오 중복이 적고 투자 결정권이 독립적”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 시장 규모 대비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회복력과 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GP별 섹터·스테이지 스페셜티가 살아나야 민간 LP 참여가 회복되고 시장도 재확장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VC들이 ‘안전한 몇 개 기업’만 좇는 구조가 반복되면, 생태계의 스페셜티와 혁신성이 약화된다”며 “결국 출자자는 빠지고, 자금은 소수 딜로 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