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놀던 성우들, 무대에서 연극으로 놀다

by장병호 기자
2017.03.22 19:34:01

성우들이 만든 ''프로젝트그룹: 육감''
안톤 체홉 대표작 ''바냐 삼촌'' 올려
성우 화술 버리고 망가져서 연기
무대 연기 낯설지만…연기 개념 확장 재미도

연극 ‘바냐 삼촌’의 한 장면(사진=프로젝트그룹: 육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성우가 마이크 속에 들어가 논다면 연극은 무대 위에서 논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성우도 무대 위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며 함께 즐기고 싶다.” (연극 ‘바냐 삼촌’에서 일리야 역을 맡은 성우 조민수)

목소리로만 연기를 펼쳤던 성우들이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난다. 성우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육감’은 극작가 안톤 체홉의 대표작 ‘바냐 삼촌’을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 올린다. 지난 2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막 시연회에서 성우들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무대 연기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냐 삼촌’은 사랑도 욕망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바냐 삼촌과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하게 그리는 희비극이다. 연출가 이상옥은 “‘바냐 삼촌’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좋고 아름답고 예쁘고 잘 생긴 것이 환영 받는 세계에서 못난 괴짜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작품 선정 이유에 대해선 “안톤 체홉의 아름다운 대사를 성우들이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우들은 무대 위에서 예쁜 목소리만 내지 않는다. 인물들의 엇갈리는 관계 속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은 평소보다 더 격한 감정을 목소리에 싣는다. 이 연출은 “체홉의 유려한 대사를 성우를 통해 유려하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성우의 화술에서 벗어나 최대한 망가지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인물을 표현하는데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얼굴은 낯설어도 목소리는 친숙하다. 주인공 바냐 삼촌을 연기하는 성우 방성준은 투니버스 4기 공채 성우이자 MBC 16기 성우 출신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시리즈의 맨티스를 비롯해 게임 ‘스타크래프트2’의 해병 등을 연기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출연해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성우일 때는 마이크를 앞에 두고 화면만 보며 연기했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다른 이와 같이 호흡을 맞추다 보면 보다 확장된 개념의 연기를 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역을 맡은 채안석은 “목소리 연기와 연극 연기 중 어느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연극 연기는 움직임과 표정 등이 익숙하지 않고 감정의 선이 두터워서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연습 동안의 고충을 털어놨다. 유모 마리나 역의 김사라는 “똑같은 공간을 걷는다고 해도 소리로 표현하는 템포는 다르다. 눈빛을 교환하면서 작은 움직임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것이 연극 연기만의 다른 점”이라고 했다.

‘프로젝트그룹: 육감’은 마이크 앞을 벗어날 수 없는 소리 연기와 신체 움직임 위주의 무대 연기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취지로 성우와 배우가 함께 하는 집단이다. 2014년 연극 ‘갈매기’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 ‘마음의 범죄’ ‘진실게임’과 낭독극 ‘자정의 픽션’ 등을 공연했다. ‘바냐 삼촌’은 오는 26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