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한창인데 해외선 "위험하다" 경고
by장영은 기자
2025.07.15 17:16:20
영란은행 총재 "은행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제해야"
BIS "통화로서 핵심요건 충족 못해…강한 규제 필요"
ECB 총재 "공공재인 화폐를 민간에 넘기는 결과"
한은도 신중론 고수…"은행부터 단계적으로 도입"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공약을 기폭제로 여당의 관련 법안 발의, 업계의 상표권 등록과 관련 사업 진출 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자산 생태계 진입을 위한 필수 인프라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유럽 주요 중앙은행과 국제기구는 △금융안정 위협 △통화정책 저해 △자금세탁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론과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달러 패권 강화와 미 국채 수요 증가 등을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시키려는 미국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이미지= 챗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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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따르면 국제 금융 규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FSB) 의장을 맡고 있는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은행들의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의 대출 기능을 약화시키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베일리 총재는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게 되면, 이는 전통적인 예금 기반 대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의 대출 여력을 감소시키고 은행의 신용 창출(대출) 기능이 약화되면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스테이블코인이 그 자체로 화폐의 단일성을 훼손해 통화정책을 약화시키고, 안정적인 가치가 유지되지 못할 경우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를 촉발해 금융 안정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스테이블코인이 자금세탁 등 금융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규제 사각지대에서 불법 자금 흐름을 조장할 수 있다”면서 “이는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통화의 핵심요건으로 꼽히는 단일성,탄력성, 무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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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두건의 보고서를 연달아 내면서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불안정성을 키우고, 불법 자금 유입에 악용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외화(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IS는 지난 11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 이외 지역의 거주자들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표시 자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이는 해당 국가의 통화정책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확산할 경우 해당 국가의 통화 주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들이 대량 환전을 시도하면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보유한 미국 국채 등의 대규모로 매각이 일어나면서 시장 변동성과 혼란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스테이블코인의 익명성이 자금세탁 및 범죄자금 유입을 막는 데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발간된 BIS 연차보고서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의 △단일성(singleness) △탄력성(elasticity) △무결성(integrity) 등 핵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서 “이같은 한계 때문에 규제가 있다고 해도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시스템의 주축이 될 수 있을지에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짚었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달 초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중앙은행 포럼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사유화(privatisation of money)’로, 통화공급을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이 통제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돈, 지급수단, 결제인프라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국가의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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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내 많은 주체들이 기존 금융의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은 만큼, 오히려 기존 금융보다 더 엄격한 규제체계가 필요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 금융상품과 유사한 점이 있으나, 국경을 초월한 익명성 등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정책적 도전과제를 제기한다”며 “규제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의 고유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규제와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 관련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시스템 안정성과 이용자 보호 등을 고려해 은행권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비은행 기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락하고,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예금 등이 생기게 될 경우 동일 업무,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은행에 상응하는 매우 강력한 규제를 이들 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스테이블코인이 국민 경제 전체에 끼칠 영향을 하나씩 테스트해보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