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유 기자
2020.03.12 18:14:53
코로나19 확산으로 주가 급락, 오너 3·4세 자사주 매입 러시
싼값에 지분확보·책임경영 의지·주가 부양 등 노림수
GS·LS 등 형제많은 오너家 현상 두드러져, 기업 자사주 매입도
[이데일리 김영수 김정유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일 주가가 급락하면서 최근 재계 오너가(家)의 자사주 매입이 잇따르고 있다. 주가 급락 상태에서 오너가가 직접 주식을 매입하면 주주들에게 회사가치가 오를 것이란 기대감을 심어주면서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고 책임경영 명분까지 쌓을 수 있어서다. 동시에 주가 하락 국면에서 주식을 싼 가격에 매입, 오너가들이 향후 승계작업을 손쉽게 진행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GS그룹의 오너4세인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은 지난 6일과 9일 그룹내 지주사인 (주)GS 보통주 3만4133주를 장내매수했다. 올 들어서만 총 204억원을 들여 15차례 (주)GS 주식을 매입했다. 지분율도 지난해 말 1.51%에서 올해 2.01%까지 뛰었다. 허 사장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섰다. 현재 GS그룹내에서 주식 매입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오너4세 중 한 명이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인 허서홍 GS에너지 전무도 지난 9일 (주)GS 보통주 3만2000주를 장내매수했고,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아들인 허준홍 대표도 지난달 2차례에 걸쳐 10만주를 매입했다.
LS그룹 오너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우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아들인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은 지난 10일 (주)LS 보통주 2500주를 장내매수했다. 구 회장이 이달 들어 총 4차례에 걸쳐 매입한 주식은 8325주로 지분율은 4.10%다. 구 회장은 오너2세로,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공유하는 LS그룹의 문화에 따라 현 구자열 회장에 이어 차기 그룹 회장으로 꼽힌다.
오너3세 중 가장 지분매입이 활발한 인물은 구동휘 LS 전무다. 구 전무는 구자열 회장의 아들로, 지난 10일 (주)LS 보통주 1000주를 매수했다. 구 전무가 이달 들어 장내매수한 (주)LS 주식은 7600주로 지분율도 작년 말 2.21%에서 올해 2.36%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LS그룹 오너3세 중 가장 많다. 고(故)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인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사장도 최근 (주)LS 지분매입 경쟁에 가세했다. 구 부사장은 이달 들어서만 4차례에 걸처 (주)LS 보통주 1만2000주를 장내매수했다. 지분율도 1.42%에서 1.54%로 올랐다. 형제 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GS·LS그룹의 오너3·4세간 지분매입이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GS·LS그룹 외에도 최근 대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활발하다. 철강업계에선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 세아제강 부사장이 꾸준히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 부사장은 이달 들어 지난 4일, 5일 세아제강지주(003030) 보통주 5834주를 장내매수했다. 지분율도 지난달 20.67%에서 20.82%으로 올랐다. 이 부사장은 창업주 이종덕 명예회장의 장손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대표와는 사촌간이다. 현재 세아그룹은 2세대간 형제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최장수 제약사인 동화약품(000020)의 오너4세인 윤인호 전무도 주가 하락을 틈타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윤 전무는 지난 11일 자사주 3만9325주를 장내매수했다. 지분율은 1.40%. 윤 전무는 아버지인 윤도준 동화야품 회장, 삼촌인 윤길준 부회장에 이어 개인 주주로는 3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 중이다. 누나인 윤현경 상무보다 지분이 많다.
기업 자체가 주가부양을 위해 자사주 매입에 꾸준히 나서는 사례도 있다. SK네트웍스(001740)가 대표적이다. SK네트웍스는 지난 5일 자사 보유 주유소 매각대금으로 유입된 1조3321억원 중 1000억원을 들여 자사주 매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 주가는 지난해말 6000원에서 현재 5000원을 밑돌고 있는 상황으로 주가부양 측면이 강하다. 회사 차원에서의 이번 자사주 매입은 2017년이후 3년 만이다. 최신원 회장 역시 2016년 3월 경영 복귀후 자사주를 매입을 통해 꾸준히 지분율을 늘리고 있다. 2016년 0.47%(116만2450주)에 불과했던 최 회장의 지분율은 올 2월 현재 0.83%(205만7292주)까지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렌탈·모빌리티’로 사업을 재편한 최 회장이 앞으로도 책임경영 차원에서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매입하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너가의 자사주 매입 명분은 ‘책임경영’과 ‘주주가치 제고’다. 실제 오너가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 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주가 급락 상황에서 오너가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 자체가 회사 실적이나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외부 변수로 급락한 주가를 방어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부분 자사주 매입이 오너3·4세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만큼 승계 과정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주식을 직접 증여하기보단 주가 하락시 이를 매입해 승계를 쉽게 풀어나가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식 증여에 따른 승계비용이 크기 때문에 오너가 입장에선 주가가 저점일 때 주식을 매입하게 되면 향후 승계에 있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지분을 늘릴 수 있다”며 “책임경영 차원의 의도도 있겠지만 승계 차원의 역할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