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美전역 '급속확산'…생필품 동나고 학교·상점 문닫아

by김나경 기자
2020.03.16 18:55:53

美49개주서 확진자 3700여명…이틀만에 1700명 급증
“나도 걸릴라”…식료품·생필품 ‘사재기’ 난무
휴교령·통금령·집회금지령에…對정부 대책 요구 봇물
잇따른 프라이머리·유세 연기·취소…대선 차질 우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김나경 인턴기자]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불과 이틀 만에 1000명이 급증해 3000명을 넘어섰다. 이탈리아처럼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국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면서, 시민들은 ‘블랙 프라이데이’ 수준으로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고 일부 지역에선 학교 문을 걸어잠갔다.

50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는 금지 권고가 내려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는 경선도, 경선 주자들의 유세도 속속 연기됐다. 중앙은행은 긴급 통화정책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인하했다.

15일(현지시간) 존스홉킨스대학이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이날 미국 내 확진자는 3774명으로 나타났다. 2000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이틀 만에 1700여명이 증가한 것이다. 사망자 수도 69명으로 이틀 만에 20여명 늘었다.

미국에서는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1000명에 이르기까지 약 50일이 걸렸다. 하지만 2000명까지는 사흘, 또 3000명까지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도 웨스트버지니아주를 제외한 49개주(州) 전체와 워싱턴DC로 확대됐다.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확산 방지를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사들이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병원에서조차 ‘감염될 지 모른다’는 시민들의 두려움도 커졌다. 다른 주요 발병국과 마찬가지로 외출을 삼가는 시민들이 늘어나며 지역 경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생필품과 식료품을 대거 사재기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14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월마트 매장이 텅텅 비어있다. 미국 대형마트에서는 마스크, 손 세정제뿐 아니라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제공=AFP]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손 세정제와 마스크뿐 아니라 통조림 캔, 화장지 등 생필품까지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아이다호의 윙코 식료품 매장에서 파스타, 쌀과 밀가루 코너가 텅텅 비어 있었고,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와 월마트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낀 채 쇼핑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은 최근 몇 주간 쌀·통조림 식품 판매량이 각 50%, 40% 늘었으며, 파스타 면과 땅콩버터 잼, 생수 등 생필품 판매량이 이달 들어 급상승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유통업체들은 “2주 전 처음으로 마스크와 손 세정제 사재기 조짐이 나타난 후 지금은 빵, 우유와 냉동식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H-E-B·월마트·크로거 등 대형 마트에들은 사재기 주요 식품들은 판매 개수를 제한하고 있다.

유통·판매업체들의 자구책에도 지난 주말 블랙 프라이데이 수준으로 쇼핑량이 급증했고,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언론 브리핑에서 “진정하라. 긴장을 풀라. 너무 많이 살 필요가 없다”며 사재기 자제를 당부했다. 그는 “누구도 생필품을 비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다 지나갈 것”이라며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안심하라’,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보다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응급 의료시설 준비를 위해 육군 공병부대를 동원해 군사기지나 대학 기숙사 등을 임시 의료시설로 쓸 수 있도록 개조하자고 촉구했다. 비싼 입원비 등 의료비 부담이 큰 취약계층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금 상황이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현역 육군 병력을 이용하는 게 연방법 위반은 아닐 것으로 본다”며 “그렇게 해도(공병부대를 동원해 임시 의료시설을 늘리더라도) 여전히 중환자 병실이 부족하겠지만 그게 우리의 최선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스콧 스트링어 뉴욕시 감사원장은 아예 필수 서비스를 제외하고 도시 전체를 폐쇄해야 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주장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선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뉴저지주에서도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도 65세 고령 노인들에게는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 것을 당부했다.

15일(현지시간) 오후 9시부터 오하이오주 모든 주점과 음식점의 영업이 중단됐다. 이에 식당 종업원들은 한시적 영업 중단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AFP]
이외에도 많은 주정부가 자체적으로 지역 상점들과 주점들의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일찍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뉴욕시에서는 17일 오전 9시부터 모든 식당과 주점, 카페 내 음식 판매를 금지하고 배달이나 포장 주문만 가능하도록 했다. 워싱턴주·메사추세츠주도 식당과 주점의 배달·포장 주문만 허용했으며, 보스턴시는 밤 11시 전에 식당과 주점이 문을 닫도록 했다.

학교 문도 속속 닫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샌디에고·워싱턴DC 등 대도시에서는 향후 2~3주에 대해 휴교령을 내렸다. 일리노이주는 29일까지 관내 모든 국공립 학교를 폐쇄할 예정이며, 오하이오와 미시간·미네소타주에서도 잠정 휴교를 선언했다.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집회 및 문화·종교 행사도 제한된다. 시애틀과 뉴욕의 가톨릭 교회는 성 패트릭의 날(3월 17일)을 앞두고 미사 일정을 취소했다. 모르몬 교회에서도 당분간 예배 일정을 중단한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최소 5월 1일까지 250인 이상이 모이는 행사를 금지했다. 스포츠 경기, 종교 모임뿐 아니라 결혼식과 장례식 등도 제한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쿠오모 주지사는 NYT 칼럼에서 각 주정부가 상점이나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하는 시기, 행사를 취소해야 하는 기간 등에 대해 통일된 연방 기준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조지아주는 전날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24일 예정됐던 2020년 대통령선거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5월 19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루이지애나주도 프라이머리를 다음 달 4일에서 6월 20일로 미뤘다. 뉴욕주 선거관리위원회 또한 4월에 예정된 예비선거를 최대 6월 23일까지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리조나, 플로리다, 오하이오, 일리노이주 등 4개주는 예정대로 17일 프라이머리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향후 연기하는 주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콜로라도, 네바다주 자금 모금행사를 취소했다. [사진제공=AFP]
선거 유세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12일부터 콜로라도, 네바다주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재선자금 모금행사를 취소했다. 민주당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지난 10일 오하이오주 선거 유세를 취소했다.

11월 대선마저 연기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지만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연기는 연방법에 따라 11월 첫 월요일 다음 날 치러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헌법은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1월 20일에 임기를 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방법과 헌법을 개정하면 가능하겠지만 절차가 까다로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NYT는 “선거 일정 변경보다는 다수의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우편투표 등 투표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현실적이다”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