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청구 간소화해도…서류 떼는 불편 계속, 왜?

by정병묵 기자
2024.10.23 18:49:48

내일부터 시행…'반쪽' 출범 우려
EMR 도입 의무 아니라 참여 낮고
참여기관 중 절반만 전산화 동참
시행 첫 날부터 소비자 혼란 불가피

[이데일리 정병묵 송주오 기자] 이달 25일부터 보험업계의 숙원이었던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시작한다. 다만 참여 기관이 절반에 그쳐 보험 소비자의 불편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반쪽 출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 의료계는 이달 25일부터 실손보험 간소화 서비스를 개시한다. 이 서비스는 보험 가입자가 직접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청구하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실손보험은 작년 말 기준 약 3997만명이 가입, 연간 1억건 이상이 청구돼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지만 복잡한 청구절차에 따른 불편이 지속했다.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가입자가 의료비 증빙서류(진단서,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험사마다 모바일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종이 서류를 떼어 사진을 찍고 모바일 앱에 업로드하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불편을 지속해 왔다.

현 정부 민생과제 중 하나로 지난해 10월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병상 30개 이상 병원과 보건소 등 7725개 요양기관이 대상으로 내년 10월부터는 동네 의원과 약국으로 확대한다. 이를 위해선 각 병원에 환자 진료기록을 관리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도입률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그러나 중소 병원은 자체 전산시스템 구축이 어려워 EMR 업체가 개발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병원의 참여율이 낮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참여하는 병원은 3781곳으로, 전체 대상 병원(7725곳) 중 48.9%가 전산화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중 시행 대상 의료기관의 91.7%를 차지하는 EMR 솔루션 사용 병원의 참여율이 3885곳 중 107곳으로 2.8%에 불과한 상태다.

이들 병원의 청구 비중은 43.1% 수준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25일 시행해도 보험 소비자 태반은 예전처럼 종이서류를 떼어 보험금을 청구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이 문제는 지난 10일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있었다.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일단 부족한 상태로 시행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EMR 업체들의 참여율이 낮은데 그간 EMR 업체도 반대해 참여를 안 하다가 대형사를 포함해서는 동의했다”고 했다.

병원과 EMR 업체 간 연계 역할을 맡은 보험개발원은 최대한 빨리 EMR 시스템 설치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도입으로 접수 업무 축소 등 보험금 업무 처리 과정을 간소화해 더욱 신속하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지만 초기에 삐걱거리는 건 사실이다”며 “초기 진통이 다소 있지만 문제가 원활히 해결돼 소비자 편익이 증진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간소화 서비스는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실손24’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거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용할 수 있다. 간소화 서비스는 25일 이후 발생한 진료비 내역부터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 처방전까지 전자 전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원 진료비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진단서, 입·퇴원확인서 등 추가 서류는 가입자가 사진을 찍어 별도로 전송해야 한다. 또 약을 처방 받았다면 약제비 영수증도 별도 전송 대상이다. 내년 10월 25일부터는 약제비도 자동으로 청구할 수 있다. 대리청구도 가능하다. 직접 보험금 청구서 작성이 어려울 경우 ‘나의부모/제3자 청구’를 통해 타인이 대신 작성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보험사에 실손보험을 가입했다면 동시에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의할 점도 있다. 진료받은 병원에서 보험금 청구를 신청하면 된다는 정보는 잘못 알려진 내용이다. 보험금 청구 주체는 가입자 본인이기 때문에 병원이 아닌 실손24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직접 청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