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엑소더스]①`사업하기 좋은 나라` 옛말…짐싸는 韓기업들

by김대웅 기자
2017.05.31 16:55:36

이마트 20년만에 항복선언…잇따르는 사업 철수
사드와 무관한 경쟁력 저하…홍색공급망 확충 `치명타`
준법경영으로 신뢰 구축한 日기업 사례 본받을 만

31일 이마트가 중국 진출 20년만에 사업 철수를 공식 선언했다.


[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이라 불렸던 중국에서 한국기업들이 잇달아 짐을 싸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중국 경제의 구조개혁과 질적 변화가 이뤄지면서 사업환경이 달라지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뒤처진 탓이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해온 이들은 “규제가 강화되고 임금이 올라가는 등 중국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고 말한다. 세계 최대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국가별 수입규모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던 한국은 최근 두 달 연속 미국과 일본에 자리를 내줬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가 최근 발표한 4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중국은 수입액(1419억달러)이 전년동월대비 11.9% 증가했지만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130억달러로 5% 증가에 그쳤다. 이로써 한국은 이 기간 131억달러를 기록한 일본에 1위를 내줬다. 3월에도 한국은 미국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굳건하게 유지해오던 중국의 최대 수입국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부푼 꿈을 안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진출했던 굴지의 국내 기업들도 잇달아 항복을 선언하고 있다.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현지기업의 부상과 외국기업에 배타적인 분위기 등으로 인해 중국 진출 20년만에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그동안 설(說)이 분분했던 이마트 철수는 결국 31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마트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힘으로써 공식화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데 따른 보복 조치로 무더기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롯데마트의 어려운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에서 한국 방송프로그램 판권 판매와 드라마·예능·영화 제작 등을 가장 활발하게 벌여온 CJ E&M(130960)은 올들어 중국법인 인력을 대폭 축소하면서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자동차(005380) 역시 중국 생산라인을 일시 중단하는 등 불안한 모습이다.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등 대기업 계열의 홈쇼핑업체들도 사업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사실상 휴업상태에 들어갔다. 한때 중국시장 휴대폰 점유율 1위였던 삼성전자는 화웨이 오포 등 로컬 브랜드에 밀려 현재 5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사드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기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1000개 이상의 매장을 오픈하며 승승장구했던 카페베네가 지난해 사실상 폐업에 이르렀고 밀폐용기의 대명사로 불리던 락앤락도 중국 매출이 급속도로 줄어들며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산둥성과 광둥성을 중심으로 몰려있는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중국 전역에 진출해 있는 우리기업은 현재 1만7000여곳으로 추산된다. 경영 악화로 인해 사업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법적 청산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야반도주 하는 경우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광저우에서 9년째 전자부품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는 한 한국인은 “중국은 청산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이미 사업이 위기를 맞은 자영업자로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야반도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임금 단가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생산라인을 줄이거나 외주를 주는 등의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베트남이나 태국 등 임금이 낮은 곳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면서 덩그라니 남아있는 협력업체의 경우 활로를 모색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중국내 중소기업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인 처지가 됐다. 칭다오의 악세서리업체 대표는 “중국 정부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이제는 자금줄을 확보하기도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물론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은 비단 우리 기업만의 얘기는 아니다. 임금이 크게 올랐고 여러 분야에서 중국기업들이 부상했을 뿐 아니라 중국내 안전의식 등이 높아지면서 규제도 더욱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와 의류 브랜드인 막스앤드스펜서, 미국 건축자재 유통회사 홈데포와 화장품업체 레블론 등이 철수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특히 홍색공급망 정책이 시행되면서 중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홍색공급망은 중국이 수입 중간재 대신 자국 제품을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한다는 정책이다. 중국은 원자재와 중간재 등을 들여와 낮은 인건비로 가공한 뒤 수출하는 가공무역이 제조업 업그레이드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현 정부 들어 가공무역 금지품목을 대폭 늘렸다. 이렇다 보니 중간재 비중이 높은 한국기업들의 피해가 더욱 컸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있던 일본기업들의 대응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기업들은 아시아시장 전체를 놓고 보며 중국에 올인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차이나플러스원` 기조 하에 중국내 변화하는 규제에 순응하면서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중국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소비특성 변화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업 비중 확대 등을 강조하며 중국에서 새로운 길을 뚫어가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인들은 중국에서 임금 상승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는 반면 우리 기업인들은 규제 강화를 최대 어려움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중국경제 전문가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서 준법경영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길을 터가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규제에 순응하기보다 규제의 틈을 찾아 이른바 `꽌시`로 해결하려는 과거 습관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일본은 중국과 40년 이상 교류해 오며 우리보다 많은 노하우를 축적했을 뿐 아니라 기술 전수에 있어서도 후하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일본 기업들은 준법정신과 친절함으로 무장해 신뢰를 쌓아왔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기업들은 중국에서 부도가 나도 야반도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 전문가는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중국 규정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우리 기업들이 가질 필요가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더라도 채무를 다 갚고 법 절차에 따르면서 신뢰가 높아졌고 이것이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