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pick] '곤 시대' 종언…日닛산 속으로 웃는다
by정다슬 기자
2019.04.08 17:22:03
곤 전 르노-닛산 회장, 주주종회서 이사직 해임
日검찰 네번째 체포..곤은 무죄 주장, 9일 영상 공개
세나르 르노 회장, 닛산 이사 들어왔지만 회장직은 공석
닛산, 르노 지배 벗어나 독립경영 체계 준비
| △3월 6일 일본 도쿄에서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떠나는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모습. [사진=AFP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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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일본 닛산 자동차가 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이사직 해임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으로 취임해 양사를 이끌어 오던 카를로스 곤 시대가 공식적인 막(幕)을 내렸다.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 겸 최고경영진(CEO)를 비롯한 현 경영진은 이날 주총에 참석한 4000여명의 주주들 앞에서 “큰 걱정과 폐를 끼쳤다”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약 110여일간의 사건으로 닛산은 르노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경영권을 구축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오전 10시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닛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사이카와 사장와 다른 임원들은 사죄로 회의를 시작했다. 히로토 사장은 “이번 일은 전대미문이라고 해도 좋다. 귀를 의심할만한 일이 현실이 됐다. 곤 전 회장의 체포부터 4개월, 이번 총회는 당사로서는 부정행위에 대한 매듭을 짓는 날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보수를 축소 신고한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일본에서 피의자의 구속 기간은 최장 23일이지만, 일본 검찰은 그동안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면서 ‘재체포’하는 형식으로 구속 기간을 늘려왔다. 곤 전 회장은 지난달 6일 보석금 10억엔(약 100억원)을 내고 108여일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곤 전 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일본 검찰은 곤 전 회장이 오만의 닛산 판매대리점을 통해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했다. 네 번째 체포다.
이날 주총에서는 사이카와 사장 등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에 대해 주주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일부 주주는 곤 전 회장의 배임 등의 혐의가 발생하는데 일조한 현 경영진이 앞으로도 닛산을 책임지는 것이 맞느냐고 질의하기도 했다.
사이카와 사장은 “깊이 반성을 하고 있다”면서도 “회사를 성장궤도로 빨리 복구시킬 책임이 있다”며 사퇴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신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닛산의 공로자였던 곤 전 회장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며 화살을 곤 전 회장에게 돌렸다. 도요타 마사카즈 사외이사 역시 “(곤 전 회장의 경우처럼) 사적 이익을 위한 부정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권한과 정보가 (곤 전 회장에게) 집중됐다. 부정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곤 전 회장의 체포에 우려를 나타내던 르노도 곤 전 회장의 개인 비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곤 전 회장이 파리 근교 베르사유궁 결혼식에서 열린 자신의 재혼 결혼식을 공금으로 처리하는 등의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르노는 곤 전 회장을 해임하고 미슐랭(미쉐린)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장 도미니크 세나르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르노 출신 닛산 이사인 장-밥피스테 두잔은 “곤 전 회장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곤 전 회장의 회장직 해임에는 찬성했다”고 말했다.
14년간 이어진 ‘곤 시대’에 종지부가 찍히면서 ‘포스트 곤’ 체제 준비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르노와 르노의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는 르노 측에서 닛산의 회장직을 역임하길 바라고 있지만, 닛산은 일본인 출신 회장을 세워 경영의 독립성을 확보하길 원하고 있다.
아직 공석으로 남아있는 회장직에 대해 사이카와 회장은 “현 단계에서 회장직을 부활시키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닛산은 이번 기회에 닛산 회장 선임을 포함한 지배구조 체제 전반을 손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만들어진 제3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개선특별위원회’는 이날 활동을 마치고 닛산 측에 활동결과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닛산은 특위의 제언을 바탕으로 닛산 회장 선임을 포함한 지배구조 체제, 임원의 보수 결정 구조 등을 총괄하는 ‘지명위원회 등 설치회사’ 안건을 마련해, 6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회장 선임 역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르노와 프랑스정부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닛산의 쿠데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르노는 닛산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3.4% 보유하고 있지만 닛산은 르노 주식의 15.01%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이마저도 의결권이 없다. 이는 1999년 닛산이 위기에 빠졌을 당시, 르노가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체결된 구조이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닛산의 시총이 르노의 두 배에 달하는 등 규모면에서도, 판매량에서도 닛산이 르노를 월등히 앞선다. 닛산 내에서 언제까지 르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느냐는 불평이 커진 상황에서 프랑스정부가 아예 르노와 닛산을 합병시키려고 하자, 닛산은 물론 일본정부, 일본언론까지 나서 곤 전 회장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실제 ‘곤 축출’을 계기로 르노와 닛산의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는 3사 공동수장제를 채택, 과거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만들어 얼라이언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사이카와 사장이 이날 “지금까지는 (곤 전 회장) 한 사람의 재량에 따라 평등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동등하게 찬성, 반대를 외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 것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날 주총에서 이사로 임명된 세나르 르노 회장의 직함 역시 회장직이 아닌 부회장이다. 르노 회장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파트너로서 정중히 대접하되 회장직은 자신들이 결정하겠다는 닛산 측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나르 회장은 이사직 선임안이 통과된 이후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르노가 닛산의 대주주인 상황에서 향후 경영주도권·합병 등의 이슈를 놓고 르노와 닛산의 갈등이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8일 도쿄에서 열린 닛산 주주총회에 이사로 선임된 장 도미니크 세나르(오른쪽) 르노 회장이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유투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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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과 곤 전 회장의 법정 다툼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곤 전 회장은 체포 이후 한결같이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닛산 측의 주총에 맞춰 곤 전 회장 변호인단은 9일 오후 3시 곤 전 회장이 체포 전 촬영한 인터뷰 영상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 영상에 곤 전 회장이 밝히겠다고 말한 ‘진실’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곤 전 회장의 아내 캐롤은 프랑스 정부가 곤 전 회장의 석방에 나서주길 호소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곤 전 회장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이카와 사장은 곤 전 회장과의 법적 분쟁에서 닛산이 패할 가능성에 대해 “변호인단으로부터 곤 전 회장의 해임·해직에 법적 리스크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며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