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여고 스쿨미투' 피해 학생 "스무살 때 성추행 알리려 노력"

by손의연 기자
2020.07.21 18:59:51

북부지법, 성추행 혐의 교사 A씨 공판에 피해학생 출석
"국민신문고에 전화상담도 했지만 사실 알리기 힘들어"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전국 ‘스쿨 미투’ 사건의 도화선이 된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성추행 피해 학생이 사건 공론화 이전에도 피해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법원 (사진=이데일리DB)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마성영)은 21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5)씨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앞서 A씨는 2011년 3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교내 생활지도부실과 교실 등에서 제자 5명을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날 법정엔 2012년 용화여고 재학 당시 해당 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B(25)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B씨를 포함한 학생들은 A씨가 치맛속에 손을 집어넣어 허벅지를 만지거나 가슴, 하체 부위를 툭치고 입으로 볼을 깨무는 등 강제추행을 했다며 피해사실을 알린 바 있다.

B씨가 증언하는 동안 피고인 A씨는 별도의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B씨는 A씨가 생활지도부실에서 면담을 하며 자신의 자켓을 벌려 얼굴을 들이밀거나 앉은 상태에서 치마 밑 허벅지를 만졌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B씨는 2014년도에 국민 신문고에 해당 교사의 성추행 사실을 신고하려 했지만 실제 이뤄지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스무살이 된 후 국민신문고에 성추행 관련 전화상담을 했다”면서 “당시 나 혼자였고 상담원과 통화하면서 현실적으로 해결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접수까진 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문제제기를 왜 하지 못했냐는 변호인의 질문엔 “학생 중 하나가 여선생님에게도 피해사실을 상담했고 당시 선생님도 해당 교사의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걸로 들었다”라며 “부모님은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할까봐 또는 입시에 영향 미칠까 두려워 말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한 B씨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부적절한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반대신문 말미에 “피고인은 이번 일로 학생들에게 미안해 사직했다”며 “다투고는 있지만 파면 징계 처분을 받은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최경숙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 활동가는 “‘학생들에 미안해 사직했다’는 언급은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일으키거나 향후 다른 조치를 막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피해자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 변호인은 A씨가 자켓을 벌려 얼굴을 들이미는 등 추행을 했다는 B씨의 증언에 대해 “직접 해봐야겠다”고 말해 방청석을 술렁이게 했다. 이날 변호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 한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재연하겠다는 건지, 피해자가 변호인에게 재연하게 하겠다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형태든 부적절하며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변호인은 재판이 끝난 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재판부가 허락하지 않은 걸로 보진 않았고 이후 재판부가 사건 당시 피고인과 증인 사이 거리를 물어보지 않았냐”고 설명했다.

다음달 20일 열리는 공판기일에도 증인 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

용화여고 스쿨 미투는 전국 스쿨 미투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8년 A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으나 진정서를 접수한 후 보완 수사를 통해 지난달 21일 사건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