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중 IPO 법률실사 안 하는 나라, 한국이 유일"
by성주원 기자
2025.03.05 17:21:19
■인터뷰-추원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中 등 후발국가도 의무화…우리만 외면"
"수백억 조달하면서 실사비용 아낀다? 모순"
"코로나 백신처럼 투자자 보호 위한 필수 장치"
"코스닥·기술특례상장 기업부터 우선 도입해야"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IPO(기업공개) 법률실사를 안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심지어 중국도 하는데 우리는 안 한다.”
추원식(56·사법연수원 26기)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는 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IPO 시장에서 법률실사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1997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한 후 2000년부터 법무법인 광장에서 20여년간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대한생명(현 한화생명(088350)), 동양생명(082640), 만도(현 HL만도(204320)), 서울옥션(063170) 등 주요 기업의 상장 자문을 맡았던 그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에서 ‘증권의 공모와 관련한 법률실사- 각국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집필에 공동 참여했다.
 | 추원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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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대표가 25년간 IPO 업무를 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점은 한국 상장 시스템의 ‘독특함’이다. 국내 기업이 상장 시 법률실사는 필수가 아니다. 반면, 외국 기업이 한국에 상장할 때는 법률실사가 의무다. 한국 기업이 외국에 상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추 대표는 “미국, 영국, 홍콩 등 모든 주요 시장에서는 법률실사가 당연한 절차”라며 “발행사와 주관사 양쪽에 변호사가 붙어 실사를 하고,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에 잘못된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검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 상장할 때는 법률실사를 의무화하면서, 한국 기업의 상장에는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생긴 배경으로 한국의 독특한 상장 문화를 짚었다. 추 대표는 “우리나라는 발행사와 주관사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구조”라며 “외국은 양측이 서로 견제하며 위험을 상쇄시키는데, 한국은 주관사가 발행사의 요구에 맞춰 상장을 성공시키는 것이 더 큰 이득인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를 축구에 비유해 ‘11명 대 11명으로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22명이 다 한 팀이 돼버리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추 대표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긴 파두를 비롯해 경영권 분쟁 발각으로 상장이 취소된 사례 등을 언급하며 IPO 법률실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법률실사를 했더라면 방지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많다”며 “실사 과정에서 회사의 법률적 위험, 쟁송 우려 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고, 중요 계약의 존부 등을 살펴볼 수 있어 투자자 위험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특히 법률실사를 ‘코로나 백신’에 비유하며 사전 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사후적으로는 뭘 해도 늦다”며 “코로나에 걸린 후 약을 먹을 수도 있지만, 백신을 미리 맞는 것이 중요하다. 법률실사는 백신과 같다. 모든 문제를 다 잡을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률실사 의무화를 반대하는 가장 큰 논거는 ‘상장 비용 증가’다. 추 대표는 이를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법률실사 비용이 2000만~5000만원 정도 든다고 해도, 공모 자금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인 점을 생각하면 결코 과도한 비용이 아니다”라며 “‘영세한 기업에게 부담’이라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공모자금 수백억원을 가져가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률 비용은 안 내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추 대표가 특히 강조한 점은 법률실사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면, 대기업이 아닌 코스닥 기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당국은 1~2조원 규모의 대기업부터 법률실사를 의무화하고 단계적으로 코스닥까지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접근법”이라며 “대형 기업들은 이미 내부 법무팀과 자문 변호사를 통해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오히려 기술특례상장 기업이나 코스닥 기업들처럼 리스크가 큰 곳부터 법률실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대표는 단순히 소송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법률실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률실사를 통해 해당 기업의 자본 형성 과정, 인허가, 주요 계약, 환경, 보험, 고용, 지적재산권 등 전반적인 법률 위험을 점검할 수 있다. 그는 “특히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경우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충돌은 없는지, 핵심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법률실사가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를 높여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률실사를 통해 시장에서 피할 수 있게 되는 사회적 비용은 실사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며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후발 주자인 중국도 법률실사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한국이 아직도 이를 외면하는 것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 추원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인터뷰.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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