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김병준·손학규·정동영, 올드보이들의 '적대적 공생'

by유태환 기자
2018.08.13 17:00:58

정동영 "李·金·孫 거물 상대해야" 외치며 당선
이해찬도 "金·孫·鄭 서로 잘 알아 대화 강점"
OB 비판 희석하며 재등판 정당화 꼼수 지적
전문가 "맞수라며 자신 위상 높이는 레토릭"

지난 10일 오후 청주시 충북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이해찬 당대표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적대적 공생관계.’ 냉전 시대에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동구 공산권이 대외적인 적대관계를 이용해 내부결속을 다지는 한편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한 것을 일컫는 정치학적 용어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남한의 군사독재와 북한의 김일성 수령체제 강화·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존재가 관련 예시로 꼽힌다.

13일 여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해찬 민주당 의원과 김병준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간에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점점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이미 10여년 전 정치적으로 정점을 찍었던 이들 구(舊)세대 올드보이(Old Boy)들이 서로의 존재감을 부각하면서 자신의 재등판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상호 간 올드보이라는 비판을 희석하고 자신이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김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에게 이같은 행보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지난 5일 열린 평화당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정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이번에 선출되는 새로운 당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병준 위원장, 그리고 당대표가 유력시되는 이해찬 의원과 손학규 고문 등 거물급 정치인을 상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존재감 있는 당대표가 선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전날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는 “이 의원만큼 생각이 젊은 사람이 없다”며 “생각의 나이가 중요하다. 이 의원은 늘 젊고 개혁적”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각각 8.25 민주당 전당대회와 9.2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이 의원과 손 고문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김병준, 손학규, 정동영 세 분 모두 다 저하고 일을 해본 사람들”이라며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대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좋은 환경”이라고 올드보이 간 호흡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손 고문도 지난 8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김 위원장과 오랫동안 알고 있다”며, 한국당과 관계설정에 대해서는 “바른미래당을 제대로 세우고 나서”라고 했다.

대표 경선이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이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 대표 당선과 손 고문의 출사표가 이 의원의 대세론을 강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 대표가 이 의원과 대항마 구도를 강조하면서 당선돼 이 의원이 알게 모르게 덕을 보는 면이 있다”며 “이 의원보다 나이가 많은 손 고문의 출마도 (이 의원에게)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언제적 이해찬·손학규·정동영이냐”며 “자성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들이 아닌 이상 정치권 내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평가받는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서로가 상대방을 비판하고 맞수라고 하면 상대방을 높이는 동시에 자신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이해찬 의원에 대해 ‘좋다. 훌륭하다. 정책역량이 돋보인다’고 하면 그만큼 이쪽에서도 돋보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서로를 띄워 주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의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