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단식" vs "할만큼 했다"…치킨게임 치닫는 파인텍 노사

by손의연 기자
2019.01.09 19:46:00

지난 8일 건강검진 받은 노조원 상태 심각
사측 "직접고용 불가, 폐업에는 노조파업 영향도"
노조측 "10일 김세권 전 대표 사기혐의 등 검찰 고발"
전문가 "정부와 국회가 관여해 갈등 해결해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파인텍 노동조합과 사측 간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노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일까지 모두 네 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사측의 노조원 직접 고용이지만 사측은 경영진 배임과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가 다음 교섭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424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굴뚝 농성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기탁·박준호 두 노조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지난 6일부터 시작한 단식 중단을 설득하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하지만 두 노조원은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노조는 사측이 중단된 파인텍 공장을 재가동하고 책임감 있게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두 노조원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온 의료진은 “두 농성자의 몸이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상태”라며 “밑에서 예상한 것보다 심각해 단식을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그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사측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민표 파인텍 대표는 “사측의 직접 고용은 불가능하다”며 “경영진의 배임 문제와 경영상 어려움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母)회사인 스타플렉스에 고용할 의무가 없는 사람을 고용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에 대한 경영진의 배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현재 스타플렉스도 경영상 굉장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또 “회사는 1차 굴뚝농성 후 합의한 내용을 다 지켰다고 본다”며 “법적 책임이 없는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도 도의적으로 교섭에 나서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네 차례 교섭 과정에서 김 대표가 개인으로서 1대 주주로 참여하며 자본을 투입하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노조는 “주주는 권한은 있지만 법적 책임이 없다”며 김 대표가 파인텍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서로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또 사측이 3년간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안을 제시하자 노조는 회사가 3년짜리 비정상적인 고용을 계약하자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고 거절했다.

사측은 노조가 3년 전 단체협약과 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지급할 수 없는 상여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또 노조가 제시한 파인텍 위장폐업 의혹에 대해 “늘 적자운영이었다”며 “흑자전환이 되려고 할 때마다 노조가 파업을 해 수익을 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노조는 “상여금과 임금 등은 이번 교섭에서 부차적인 항목”이라며 “나이, 경력 등에 맞춰 평균 생활임금 등을 책정하면 된다. 사측은 새 법인을 만들어 `법적인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폐업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 한다”고 반발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굴뚝 농성 411일 째인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첫 노사 교섭을 마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차광호 지회장(왼쪽)과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교섭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인텍 노사는 네 차례 교섭에도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노사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사는 기자회견 등을 열고 언론에 반박·재반박하는 입장을 번갈아 내놓고 있다.

사측은 “파인텍 노조원이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에 들어오면 이 회사마저 없어질 수 있다”며 노조원 고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노조측은 “이미 과거 파인텍 운영을 통해 사측의 무책임한 경영과 노사합의 불이행을 경험해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 할 수 없다”며 “파인텍과 같은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측은 김세권 대표의 책임을 명시하는 대안을 제출해라”며 회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노사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노조측은 10일 검찰에 김세권 전 대표를 사기·모욕 등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직접 나서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노사 간 불신이 심한 상황이라서 제3자의 객관적 판단과 이에 따른 노동중재가 필요하다”라며 “정부나 정치권이 관여해 정리해고 사유를 살피고 사측에 대한 시정조치나 노조에 대한 보상 등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파인텍은 2014년 스타플렉스 자회사 스타케미칼(옛 한국합섬)로부터 노동자들이 권고사직을 받은 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스타플렉스가 새로 세운 법인이다. 당시 노사는 새 법인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단체협약에서 합의가 되지 않아 홍기탁·박준호 두 노조원은 지난 2017년 11월부터 굴뚝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파인텍이 현재 공장·설비·직원이 없는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실체는 없고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로 남아있다며 파인텍 공장 재가동과 남은 5명의 노조원을 스타플렉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대립하는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미리 핸들을 꺾어 피하는 사람이 겁쟁이로 취급받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