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원유 생산 늘려라" vs 석유기업 "급할 때만 찾아"

by고준혁 기자
2022.03.10 21:13:02

석유 업계 "바이든, 우리가 비극 이용한단 수사 멈춰야"
앞서 바이든 "폭리 취할 때 아니다"며 생산 증대 요구
"업계, 그간 친환경 에너지 전환 주장하며 홀대한 정부에 불만"
"생산량 늘려도, 폭증하는 수요 감당 못할 것" 관측도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국 정부와 석유업계 사이의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전쟁으로 폭등한 국제유가 탓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강조했던 미국 정부가 거꾸로 석유 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석유 업계에 러브콜을 보낸 게 도화선이 됐다. 석유 기업들은 “급할 때만 찾는다”며 그간 화석 연료를 배척해온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주유소에서 한 남성이 자동차에 연료를 넣고 있다. (사진=AFP)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이크 서머즈 미국석유협회 소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금 순간을 이용해 가격을 착취하려는 것처럼 석유 기업들을 무작정 공격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이 업계가 세계사의 비극적인 순간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수사적 표현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8일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발표하면서 석유 업계를 향해 “러시아의 침략은 우리 모두를 희생시키고 있다”며 “그리고 지금은 이익, 폭리를 취할 때가 아니다”고 한 데 대한 반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위기 등에 유가가 불안정한 시기, 석유 기업들이 힘을 모아 원유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하며, 이처럼 석유 업계를 몰아세웠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꼽히는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따. 전 세계 하루 석유 공급량의 7%를 담당하는 러시아 원유 공급이 중단된단 우려에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지난 6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최고 130.50달러를 터치,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에 도달했다.
올해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 가격 추이. (출처=CNBC)
석유업계의 불만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 때부터 쌓여온 것이다. 대통령은 당선 확정 이후 태양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나 전기차 산업 육성에 관심을 갖는 대신 원유 시추 기업 등 탄소 배출 산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기조를 밝혀왔다. 명확한 정부 정책은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 자금이 석유 업계에서 빠져나가는 결과로 이어졌고, 회사들도 생산량 확대를 멈추게 됐다. 엑손 모바일 등 거대 석유기업들은 바이든 정부 이후, 생산성 확대보단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가총액을 현상 유지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그간 이처럼 석유 기업을 쪼그라들게 했던 바이든 정부가 이제와서 “폭리”를 운운하며 석유 생산량 확대를 요구하자, 업계에 불만은 폭발한 것이다. WSJ는 석유 업계가 화석 연료 사용을 지양하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꾀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필요할 때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하는 등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임시적인 석유 생산 확대보단,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전환 과도기에 석유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간 떠났던 월스트리트의 투자자금이 다시 돌아오게끔 하는 등의 근본적인 조치를 원하고 있다. 서머즈 소장은 “산업과 월스트리트는 모두, 백악관이 지금의 위기에 더 많은 석유가 생산되길 원한다는 신호를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석유 업계가 정부 요구를 받아들여 원유 공급을 늘린다 해도, 에너지 가격 안정이 담보된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유 공급을 늘려도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폭발하는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WSJ는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략적 비축유를 2번 풀고 거래를 끊었던 베네수엘라 등과 원유 수입을 타진하고 있는 등 석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대체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