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 놓고 갈라진 美…"이번 대선은 미국의 실패" 자조도

by김보겸 기자
2020.11.05 19:58:57

투표율은 사상 최고 찍었지만…불복 열기도 거세
'美애국가' 부르며 개표소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
바이든 지지단체, 트럼프 대선불복시 과격행동 예고

서로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서로 자신이 승자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간 다툼이 지지자 충돌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합주에서 앞서가다 역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개표소에 난입하는가 하면, 바이든 지지자들은 이에 맞서 모든 표를 집계하라는 시위를 미국 곳곳에서 열고 있다. 이 와중에 유혈사태도 벌어졌다. 사상 최고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일자 “이번 선거의 패자는 미국”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약 1억6000만명 가운데 1억명이 사전 투표를 실시해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된 선거 당일과 달리, 개표가 시작되자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시민들 간 충돌이 발생했다.

4일(현지시간) 트럼프 선거캠프가 개표 중단을 요구한 격전지 중 하나인 미시간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과 트럼프측 선거 참관인들이 개표 중단 시위를 벌였다. 미시간주 최대 도시인 디트로이트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실내 참관인을 제한하자, 대부분 공화당 소속인 참관인 30여명이 개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참관인들은 트럼프 지지자 수백명과 함께 개표장 앞 복도에서 미국의 애국가인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부르며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미시간주에서는 개표 중후반까지 열세를 보이던 바이든 후보가 개표가 99%가량 진행된 오후 1시40분(한국 시각 오후 3시 40분) 기준 13만표 넘게 앞서며 전세를 뒤집었다. 바이든 후보는 50.5%로 트럼프 대통령(48%)을 앞서고 있다.

유혈 사태도 벌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회원 3명이 4일 새벽 백악관 근처에서 칼에 찔렸다. 피해자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흑인 지지자이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문구에 페인트를 뿌리는 행동으로 유명해진 베벌린 비티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테러 배후로 지목된 단체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측은 이번 사건과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4일(현지시간)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개표소에 난입해 개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사진=AFP)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맞서 바이든 지지자들은 모든 투표를 집계하라는 시위를 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4일 바이든 지지자들이 ‘모든 투표를 개표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고 ABC방송 등이 보도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오는 6일까지 받은 우편투표용지를 개표 대상으로 인정한다 했는데, 트럼프 선거캠프는 이를 무효표로 처리해야 한다며 펜실베이니아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바이든 지지자들로 구성된 ‘결과를 보호하라(Protect the Results)’ 단체는 “우리는 이미 (트럼프의 대선 불복 시도를) 알고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거나 그가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과격한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도 소요사태에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선거 당일인 지난 3일 경계령을 내리고 선거일과 그 이후에 대선 후보 지지자 간 폭력 충돌과 폭탄 테러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연습 훈련을 실시했다.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광장에 모여 “트럼프 아웃”, “국민에게 권력을”이라 외치며 모든 표를 개표할 것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4일(현지시간) 바이든 지지자들이 개표 중단 소송을 건 트럼프 캠프에 맞서 “모든 표를 집계하라”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사진=AFP)
선거 결과를 둘러싼 충돌이 미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며 “이번 선거의 패자는 미국”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정권 교체를 평화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장치인 선거에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은 걸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여서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바이든 후보에 투표한 60대 여성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반대파 정치세력 간 폭력 사태가 우려된다”며 “바이든이 승리하더라도 국가로서의 우리는 패배했다. 생각보다 우리는 훨씬 더 분열되어 있다”며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 역시 “대선 승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패배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 바로 미국”이라고 꼬집었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난 데에는 투표 과정에 대한 불신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약 67%로 집계돼 1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정작 투표가 불공정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불신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NYT는 투표 대상과 투표 방법에 대한 규칙이 주마다 달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의 투표 시스템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 투표는 어렵거나 불확실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