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마용성' 새 집, 현찰 없으면 못산다

by박민 기자
2019.12.16 17:32:14

정부 합동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시가 9억 초과 주택 LTV 추가 강화
서울 웬만한 지역 규제 사정권 들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면제’ 효과 미지수

정부는 16일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엔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일명 ‘마·용·성’ 등 강북권 대다수 단지가 이번 규제의 사정권에 들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박민 기자] “서울 도심에선 웬만한 아파트는 9억원 이상인데 대출을 막겠다니 중산층 이하는 집 사기 더 어려워지게 됐다. 결국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게 돼 이들의 자산 증식만 더 부추길 것이다.”

정부가 16일 기습적으로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이번 규제는 현 정부 들어서만 벌써 18번째 나온 대책이다. 지난 대책의 연장선에서 세제·대출·청약 등 조일 수 있는 규제는 모조리 짜냈다. 궁극적으로 수요를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산 여건이 좋지 않은 30·40세대의 내집 마련은 더 어렵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대책을 통해 오는 23일부터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등에서는 시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은 9억원 초과분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종전 40%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실수요자라 하더라도 빚 내서 고가주택을 사는 길을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매매가가 14억원 주택에 대한 주담대는 9억원까지는 40%, 나머지 5억원에는 20%가 적용돼 총 4억600만원만 대출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1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8억8000만원으로 9억원을 육박하고 있어 웬만한 아파트는 이번 규제 사정권에 들게 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올해 서울에서 거래된 9억원 초과 주택거래 비중은 19.8%로, 전체 거래량의 5분의 1 정도가 대상에 들어가게 됐다”고 분석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대출을 이용해 9억원 이상 아파트에 갭투자하는 흐름을 차단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서민층은 저가의 주택만 사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특히 시가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아예 대출을 금지하기로 하면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뿐 아니라 일명 ‘마·용·성’으로 불리는 강북권까지 불똥이 튀게 됐다. 이들 지역에선 국민 주택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짜리가 15억원이 넘는 상황이어서 상당수 인기 지역 신축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아예 막히게 된다. 이 규제는 오는 17일 신규 대출 신청분부터 바로 적용된다.

아현동 A공인 관계자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가 지난달 15억원 넘게 팔린 이후 현재는 16억~17억을 호가한다”며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지역에서 집을 넓히는 것은 물론 기존 집이 팔리지 않으면 비슷한 가격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직접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기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주택 세대는 기존 주택을 1년 내에 처분해야 한다. 특히 시가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일 경우 반드시 1년 내 전입도 끝마쳐야 한다.

아울러 전세대출을 이용한 갭투자를 막기 위해 전세대출보증 규제도 강화했지만, 이로 인해 임대차시장 불안 우려가 커졌다. 앞으론 전세대출을 받은 차주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매입하거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하게 될 경우 대출이 회수된다. 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달리 이 같은 상황에서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되지 않았던 민간보증사 SGI서울보증보험에 대해서도 보증 제한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양지영 소장은 “이번 규제에 조정대상지역 내 등록 임대주택 거주요건 2년 충족해야 1세대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임대사업자 등록 요건을 강화해 앞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자들이 축소가 예상된다”며 “이는 전세시장 불안과 전세가격 상승을 낳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16일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엔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일명 ‘마·용·성’ 등 강북권 대다수 단지가 규제 사정권에 들게 됐다. 사진은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단지 전경.(사진=이데일리 DB)
대출은 옥죄면서 보유세 부담은 더 키웠다. 종합부동산세율(종부세)은 현행 0.5~3.2%에서 0.6~4.0%로 오른다. 3주택 이상 소유자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인상률이 높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경우 세부담 상한선이 종전 200%에서 300%로 오른다. 직전 연도에 비해 보유세의 부담이 3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종부세 세율을 4%까지 높인 것은 강남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아파트 매매 차익이 종부세를 압도하고 있어 효과를 낼 정도는 아니다”고 봤다.

정부는 또 매물잠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안에서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 때는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기로 했다.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30%)도 적용된다. 오는 17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양도하는 주택에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유예는 서울의 매물 잠김 현상에 숨통을 트는데는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분석이다. 심교언 교수는 “10년 이상 보유 주택이라는 조건 때문에 완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소장은 “중과 배제가 끝나는 내년 6월 이후에는 다시 매물 품귀 현상으로 집값 상승을 악순환 반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