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발코니·선형공원으로 전염병에 강한 도시 만들어야"

by박종화 기자
2022.01.26 23:10:12

[만났습니다]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스마트폰으로 거실 의미 없어져...테라스 더 많이 만들어질 것"
"앞으로도 도시로 사람들 모일 가능성"
"자연·사람, 온라인에 없는 오프라인 상권 가치"
"사무실에 발코니 만들면 자연과 접점"

[대담=이승현 건설부동산부 부장·글=박종화 기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효율적이고 쾌적하고 전염병에 강한 공간 구조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도시에 남겨진 과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이 계속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게 유 교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 교수가 생각하는 해법은 발코니다. 그는 “모든 아파트에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도시가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 같은 게 터져 자가격리를 하더라도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재택근무로 사람들이 체감하는 빈부격차가 커졌다. 옛날엔 조그만 집에 살아도 회사에 나오면 공평한 공간에서 생활했는데 이제 내 집 퀄리티에 따라서 업무 환경도 달라지게 됐다”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거 환경이 좋아져야 하고 마당 같은 발코니가 필요해졌다”고 덧붙였다.

그가 공원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도시를 띠처럼 관통하는 선형(線形) 공원을 만들어 접근성을 개선하면 전보다 많은 사람이 공원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유 교수 지론이다. 그는 “선형으로 공원을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공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코로나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몇 퍼센트만 이동을 금지시키면 나머지는 집 앞 공원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유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공간의 미래’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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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거실이 의미가 없어졌다. 과거 거실이라는 공간은 온 가족이 모여서 TV를 보던 공간이었는데 이젠 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니까 각자 공간에 틀어박혀서 (유튜브 등을) 본다. 거실에 나올 일이 없어졌다. 우리 주거에서 거실이라는 공간을 새로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거실이 우리한테 새로 생긴 빈 캔버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1970~1980년대 들어 아파트 문화가 되면서부터 각각의 공간이 다른 기능들을 따로따로 하게 됐다. 이젠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기능을 하는 시대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공간의 의미가 좀 다르게 쓰여질 것이다. 요즘 개발하는 아파트 평면도를 보면 거실을 요가를 하는 데로도 쓰고 자기 취미 공간으로도 쓰고 있다.

△그렇다. 거실과 부엌, 식탁이 붙어서 싱글 스페이스(단일 공간)로 만들어지고 방은 더 커지고 테라스는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바뀔 것이라기보다는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더 모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를 겪어서 알겠지만 밖에 못 나가면 제일 필요한 것은 배달 잘 되는 것 아니냐. 그런 게 도시가 더 잘 돼 있다. 병원도 도시에 있고. 코로나가 끝나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써야 하는데 쓸 수 있는 데가 도시에 더 많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쓰는 돈을 벌기 위해서 도시로 온다. 교통이 발달해도 베이스캠프를 지방에 두고 서울로 놀러 올 게 아니고 서울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지방으로 놀러 갈 가능성이 크다.



△사실 땅이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오래된 지역을 재건축하면서 자투리 땅으로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서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한 블록 내 30개 필지가 공동으로 쓰는 지하 주차장을 만들면 1층을 다 상업시설로 바뀌게 되고 자투리땅을 모아서 포켓파크(작은 도심 공원)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자율주행 로봇이 다니는 물류 터널을 뚫으면 교통량이 줄어드니까 차선 폭을 줄여서 거기를 선형의 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중요한 것은 그런 선형 공원과 상업시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추세로 도시를 가만히 놔두면 아마 1층에 있는 상가들은 대부분 점점 인기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가 볼 때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다닐 만큼 가까이 있는 생활권)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친환경적인 도시다. 모든 것을 다 슬세권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교통량이 그만큼 준다. 덜 이동하고 지역에서 소비를 해결하게 해야 한다.

△완전히 죽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오프라인에선 온라인 상권에는 없는 가치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자연이 없다. 별마당 도서관이나 현대백화점이 천창을 뚫어서 햇빛을 갖고 오고 플랜테리어(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같은 걸 하지 않나. 어떻게든 자연을 많이 갖고 와야지 온라인 상업시설과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온라인 상업 공간에는 다른 사람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 구경하러 쇼핑몰에 가는 면도 있다.

△재택근무 비율이 높은 회사들이 인재를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에 코로나 끝나고 다 출근하라고 하니 사람들이 다 사표를 썼다. 회사에서 제일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었을 테다. 회사들은 ‘모아놓고 일을 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데리고 올 것이냐, 충성도는 높은데 일 못하는 사람을 쓸 것이냐’를 놓고 갈등할 것이다.

△별로 없을 것 같다. 옛날보다 중요도는 떨어질 수 있겠지만 쉽사리 (상권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회사가 중심지에 있는 게 직원 복지하고도 직결되기 때문에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좋은 동네에 가야 한다. 아이 학교하고 연결돼야 하고 출퇴근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여러 가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기존에 인기 있었던 그런 지역들은 그렇게 확 지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건축주들의 경제적인 여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가급적이면 모든 건축주한테 테라스를 만들려고 권한다. 만약 (업무공간과) 같은 층에 발코니가 있다면 잠깐 나가서 바람 쐬고 들어올 수 있다. 어떻게든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접점을 많이 만들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건축에선 그게 발코니라는 공간으로 허용된다. 기존에는 (발코니를 만들길) 권하면 사람들이 안 했다. 관리비·공사비도 많이 들고 거기에서 담배 피우고 쓰레기 버릴 것이란 부수적이 이유 때문에. 그 당시 우리 문화로는 그런 걸 염려할 만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유현준건축사무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