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농어민의 눈물…보편 복지 탈 쓴 유류세 인하

by임애신 기자
2022.02.10 17:40:15

국제유가 상승에 유류세 20% 인하 6개월 시행
정부, 다음 달 말 이후 유류세 인하 검토 예정
보편 복지 형태이지만…"사용량 많을수록 유리"
서민 많이 쓰는 등유·LPG 프로판 지원 제외
전문가들 "필요 계층에 선별·집중 지원해야"

[세종=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인 유류세 인하를 시행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인을 하는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이 혜택이 고소득자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류세 정책을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기보다 유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은 배달·운송 등 생계형 배송업자와 에너지 소외계층, 농·어민 등에 대한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두바이유는 배럴당 89.38달러로 지난해 1월 4일(52.49달러) 대비 41.3% 올랐다. 이 영향으로 이날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 당 1697.01원으로 지난해 1월 4일(1428.43원) 대비 268원 넘게 올랐다.

국제유가가 상승하자 정부는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 20%의 역대 최대 폭의 인하를 결정했다. 유류세 인하는 지난해 11월12일부터 올해 4월30일까지 6개월간 시행된다.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면 리터(ℓ)당 휘발유는 164원, 경유 116원, LPG는 40원씩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이번 유류세 인하 결정으로 줄어드는 국세수입이 2조5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도 정부가 유류세 인사를 시행한 것은 국제유가 상승에 대응할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어서다.

(자료=오피넷)
유류세 인하는 보편적 복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동차를 많이 타는 일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한시적인 ‘할인’ 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득이 높을수록 대중교통보다 배기량이 큰 자가용을 많이 이용해서 유류세 인하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12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류세를 인하했던 2008년 당시 소득 5분위(상위 20%)의 휘발유 소비량과 유류세 인하 효과가 1분위(하위 20%)보다 각각 6.3배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누그러지지 않자 정부는 다음 달 말이나 4월 초 유류세 인하 연장을 검토할 예정이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연정하기보다 기름을 많이 쓰는 생계형 영업차량 운전자나 농어민, 에너지 소외계층에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들은 연이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으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유류세 일괄 인하라는 보편 지원을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민간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급에서 경험했듯 선별 지원은 대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어떤 식으로든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유류세 일괄 인하는 정부가 행정 편의를 고려한 정책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28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주민이 연탄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천소라 KDI 경제전망실 모형총괄은 “유류세 인하라는 게 휘발유·경유 등을 사용하는 사람에 다 인하를 해주는 보편적 지원 개념이므로 이를 지속하는 게 맞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난방비 보전처럼 선별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미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을 위한 전기·도시가스 등의 구입비를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혜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볼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유류세 인하에서 서민이 주로 사용하는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 프로판은 제외됐다. 이미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에너지단체 관계자는 “에너지 바우처와 별개로 국제유가가 급등했을 때 에너지 소외계층의 전기료·가스요금을 인하해서 청구하거나 재난지원금 때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상자에 지원금을 줄 필요가 있다”며 “저소득층 대상 에너지 지원은 물가 안정 효과나 세율처럼 정책 지표를 기준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농·어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산업계 관계자는 “어업에 소요되는 유류양이 많아 국제유가가 상승에 직결해 영향을 받는다”며 “채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유가의 일정 수준을 정해서 이 범위를 벗어났을 때 재정을 활용해 직불금을 주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