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치는 기업사냥꾼]②亞로 눈돌리는 행동주의…어떻게 대처할까

by이민정 기자
2017.05.15 17:07:00

실적이 핵심
평소에 주주들과의 관계에 공 들이기
행동주의 투자자 요구에 성의껏 대응
경영권 적당한 선에서 양보

행동주의 투자자 공격에 노출된 기업 수
출처: 액티비스트 인사이트
[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최근 리서치회사 액티비스트 인사이트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 가운데 평균 8% 정도가 행동주의 투자 공격에 노출돼 있다. 특히 아시아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투자 공격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 저평가된 기업이 늘어나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해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을 챙길 확률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월 내놓은 `행동주의 투자자의 아시아 기업 공격과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대상 기업 수가 2014년 344개에서 2015년 551개로 1.6배 증가했으며 아시아 국가 기업 공격은 2014년 17건에서 2015년 5배 가까이 늘었다.

총수 일가가 소량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지배구조가 취약한 대기업이 많아 총수 일가와 다른 주주들과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면 외국계 투자자들이 얼마든지 이들과 규합해 분쟁을 일으킬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요구 수용률이 높은 것도 아시아시장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이 확대하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엘리엇 사례는 행동주의 투자 공격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행동주의 투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헤지펀드 타깃이 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이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동주의 투자 예방의 핵심은 꾸준히 좋은 실적을 내 주주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격이 예상된다면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헤지펀드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들이 공격할 것에 대해 대비하는 한편 그들의 요구에 성실하게 대응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필요하고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요구를 수용할 것을 권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주가 상승 등을 내세우며 경영진에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는데 다른 주주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평소 주주들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라고 강조한다. 당장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에 노출되지 않은 기업들도 향후 공격 가능성 등에 대비해 주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이사회는 작년부터 올 초까지 주주들과 통화하거나 직접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이 접촉한 주주들은 전체 은행 지분의 29%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별 2016년 행동주의 투자 타깃
출처:액티비스트 인사이트


만약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전략 변화를 요구하면 CEO은 이들의 요구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인내심있게 대처해야 한다. 헤지업계 큰 손 데이비드 아인혼을 상대한 제너럴모터스(GM)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GM 경영진은 헤지펀드 그린라이트캐피털을 통해 GM주식 4.9% 가진 아인혼이 GM보통주를 배당금을 받는 주식과 자사주 매입용 주식용으로 나누라고 요구하자 아인혼 제안을 최종 거절하기 전 아인혼과 10차례가 넘는 회의를 열고 제안이 타당하지 않음을 끈질기게 설명했으며 이사회도 3번 열어 아이혼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2013년 애플은 팀 쿡 CEO가 직접 나서 애플 주가 상승을 위해 자사주를 500억달러치 매입하라는 억만장자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을 저녁 자리에 초대해 설득 작업을 벌였다.

만약 헤지펀드 요구가 기업 발전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정당하다면 타깃 기업 경영진은 경영과 관련해 헤지펀드에 큰 영향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헤지펀드를 만족시키도록 양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지난 3월 제너럴일텍트릭(GE)은 실적 부진에 행동주의 헤지펀드 트라이언의 항의가 거세지자 트라이언과의 논의 끝에 비용 절감수준을 높이고 제프 이멜트 GE CEO 보너스를 삭감하기로 했다.

실적 개선과 주주만족을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전제된다 해도 한국에서는 큰 틀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쪽으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 계류된 상법개정안도 자사주를 통한 지배주주 지분을 끌어올리는 것을 막겠다는 내용이라 이 법이 통과될 경우 큰 틀에서 경영권 방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 적대적 인수자가 기업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취득할 경우 이사회가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싸게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주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이는 포이즌필이나 경영진이나 최대주주에게 보유 지분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줘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는 차등의결권 도입 등은 반(反)기업 정서에 부딪혀 논의가 지지 부진한 상태다.